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성혈 대축일

2019년 6월 23일

13세기경 벨기에의 리에주 출신인 성녀 율리아나는 어려서부터 환시를 경험하였는데, 주님께서는 성녀에게 성체를 기념하는 날을 만들 것을 거듭 당부하셨다고 합니다. 훗날 수녀원에 입회한 성녀께서는 원장이 된 후에, 자신이 체험한 환시를 고해 신부님께 고백하면서 성체를 공경하는 축일의 제정에 힘써줄 것을 부탁합니다. 오랜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국 리에주의 교구장은 이를 받아들여, 교구에서 성체 축일을 기념하는 전례를 시작합니다.

성녀께서 세상을 떠나고 몇 년이 지난 후, 이탈리아의 볼세나에서 성체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당시 보헤미아 프라하의 한 사제가 매일 영하는 제병과 포도주가 과연 그리스도의 몸과 피인지 의구심으로 괴로워하다가 1년간 로마로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던 그 사제는 볼세나의 산타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중 또다시 의심을 하는데, 성찬례 중 성체에서 피가 흘러내려 사제의 손가락과 성체포를 적셨습니다. 그 사제는 이 사실을 교황에게 알렸고 진상조사 결과 사실임이 밝혀집니다.

이 기적이 발생한 후, 당시 교회를 대표하는 최고의 신학자였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황 우르바노 4세께 건의하여 성체성사를 기념하는 대축일이 제정됩니다. 교황께서는 이 축일을 계기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찬미가를 쓰게 하고, 성 토마스는 5곡의 성체 찬미가를 작곡합니다. 그중 하나는 우리말로 ‘엎디어 절하나이다.’라는 구절로 시작하고, 가톨릭 기도서에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성시간 때에 드리는 기도문이라든지, 성체를 공경하는 성가의 가사들이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냅니다. 이날은 우리가 미사 중에 모시는 빵과 포도주가 참으로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고 그 믿음을 되새기는 날입니다. 신자들 가운데에 성체의 의미를 단순히 상징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체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상징이 아닌 실재한다고 가르칩니다. 곧 성체는 예수님의 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 자체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이 약한 우리의 신앙을 바로 잡아주시기 위해서, 성체에 관한 여러 가지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기념하는 성체와 성혈 대축일은 기적을 체험하는 것을 기대하는 날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체를 모실 때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몸으로 변하는 기적을 기대하거나, 성체가 엄청난 힘을 준다는 기대로 모시지 않습니다. 실제로 성체가 예수님의 몸임을 믿고,예수님께서 당신 전부를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을 상기하며 성체를 모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날은 예수님께서 인간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다는 것을 상기하고, 그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짐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도 오천 명가량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군중을 배불리 먹이는 것을 목적으로 기적을 일으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제자들이 먹을 양식으로 가지고 있었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모두 백성들과 나누셨습니다. 이 기적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당신 백성들을 위해서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심을 전합니다.

동시에 이 이야기는 예수님 당신만이 백성들에게 영적인 양식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성체를 모실 때 바로 이런 점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시고, 우리는 예수님께로부터 선물을 받음으로써 힘을 얻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대축일을 지내면서 성체에 대한 신심을 더 굳건히 하고 열렬한 마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실 준비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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