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자회

2019년 10월 20일

어느덧 바자회 날이 왔습니다. 매년 이루지는 행사이지만 바자회 날은 우리 본당의 명절 같습니다. 미국이라는 타향에서 경험하는 고향의 정서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날입니다. 마치 늦은 추석 잔치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참 자주 사람들과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같이 먹고 마신다는 것은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눈다는 가장 인간적인 증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이라는 의미의 식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이 먹는다는 것은 결국 가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바자회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공동체의 가족 축제이며 동네 모든 분들을 초대하는 대가족의 축제입니다. 이렇게 큰 축제를 준비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과 많은 준비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임 또 큰 의미를 느낍니다.

어릴 적 추석 차례를 지내려면 하루 종일 온 식구들이 모여 음식 장만하고 차례상을 준비하던 기억이 납니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준비할 때 즈음에는 부엌을 떠나지 않고 엄마 옆에 앉아 “한 입만!”하고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이렇게 귀찮케 구는 저에게 부서진 전 조각을 주면 맛있게 먹으면서도 “엄마, 안 부서진 거 줘!” “차례상에 올릴 거라 안 돼! 차례 끝나면 먹어.”하고 매몰차게 거절하시면 기죽은 채 “그럼 부서진 거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온 식구가 음식을 준비하는 것만 보아도 행복했던 시절이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하루 종일 음식 장만에 시달렸던 어머니나 누나에게 그리 행복했던 추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철이 들면서 들었습니다.

그래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옛말처럼 차례를 잘 지내고 온 식구들이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할 때는 모두 다 행복한 얼굴로 즐겁게 담소를 나누던 모습에서 ‘형제가 많은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느끼곤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퀸즈성당의 대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도 그런 의미일 것입니다.

매일 같이 날씨를 첵크하며 일희일비하는 것도 연례행사요, 일주일 내내 성당 지하 친교실을 ‘김치공장(?)’을 만들며 수고하고 애쓰는 로사리오회 회원들과 봉사자들이 아픈 허리와 팔다리를 주무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김치를 담그는 모습도 행복한 연례행사입니다. 어느 분이 환히 웃으며 그럽니다. “신부님, 바자회가 일 년에 한 번이기에 망정이지 두 번만 했다간 허리 부러져 죽겠어요. 하하하” 저도 웃으며 답합니다. “알겠습니다. 절대로 두 번 하지 않겠습니다. ”

이에 질세라 안나회원 어르신들도 바자회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젊음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바자회는 명실공히 본당의 모든 단체들이 참여하는 대축제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성당 기금 마련 바자회’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단합 축제이기에 힘들지만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음식을 나누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하여 회개를 이끌어 냅니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의 미사도 이런 맥락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살아있는 빵’을 나누며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우리 서로가 한 식구가 됩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식구가 된다는 것은 바로 서로 아껴주고 보살펴 주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준다는 의미입니다. 서로의 장점을 알아봐 준다는 의미입니다. 서로의 슬픔을 위로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삶을 이해해주려 마음을 열어준다는 의미입니다. 각자의 욕심이 앞서지만 식구 앞에서 그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바라는 식구의 의미입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가을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오늘 우리의 술이 익어가고 음식이 익어가고 우리의 공동체 식구의 사랑도 들판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익어가는 벼 이삭처럼 찬란히 익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바자회를 위해 우리 공동체를 위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단체와 봉사자 여러분들께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 11: 28) 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위로와 감사를 드리며 저의 축복 기도도 함께 드립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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