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2018년 4월 22일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요한 10: 11)

오늘은 부활 넷째 주일이면서 성소 주일입니다. 영국 시인 Thomas S. Eliot의 “황무지 (The Wast Land)”에 시구에서 연유된 ‘잔인한 사월’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바람은 쌀쌀하지만 봄꽃은 여지없이 활짝 핀 사월의 마지막 주일 우리 부활의 희망을 우리 삶에 봄바람처럼 불어오길 기대합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우리는 주님의 부활이 왔구나 알고 또한 부활을 준비하면서 봄을 기다립니다. 봄이 긴 겨울의 동면에서 깨어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면 부활은 죽음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신 하느님의 승리의 선포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 위대한 승리를 만끽하고 있는지 아니면 엘리엇의 푸념처럼 잔인한 사월을 견디어 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1922년 출판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1918년 11월 11일 세계 1차 대전이 종전 된 지 4년 후의 작품입니다. 아직 유럽은 전화의 잿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이 슬픔과 고난의 시간을 보낼 때입니다. 부모 형제를 잃고, 재산을 잃고 희망마저 잃은 가장 절망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통의 절정의 순간에 절규하신 시편 22장 1절의 말씀이 당시의 유럽인들에게는 절절한 말이었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그들에게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사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었을 것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 세상은 꽃들로 덮였는데 사람들의 마음과 삶은 아직도 겨울이었고 이런 삶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봄은 화려한 꽃들을 흐드러지게 피워냅니다. 절망과 희망의 교차로에 선 그들에게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절망과 희망은 항상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습니다.

이천 년 전 이스라엘 광야에서 자신들의 주님이시며 스승님을 잃고 절망과 두려움에 빠진 이들에게 전해진 소식은 사월이 가장 행복한 달이라고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더불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예수님의 부활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가장 큰 희망이 샘솟는다는 믿음의 증거가 됩니다. 믿는 이들에게 사월은 가장 행복한 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또한 우리의 부활입니다. 절망과 두려움의 늪에 빠진 이들이 늪의 구렁텅이를 헤치고 나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바로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이기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의 순간의 끝에 믿음이라는 녀석은 아주 희미하지만 확실한 불빛을 보여줍니다. 절망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라는 진리를 알려줍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래서 어깨를 늘어뜨리고 힘없이 눈을 내리깔 때 누군가가 부르는 나의 이름이 그리 반가울 수 없습니다. 길을 잃고 어찌할 줄 모르고 방황하다 지나는 낯선 이가 친절히 길을 안내해 줄 때 우리는 절망에서 희망을 두려움에서 용기를 발견합니다. 잔인한 달이 행복한 달로 변화되는 순간입니다.

오늘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요한 10: 17-18) 부활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슬픈 순간에 우리의 곁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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