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길

2018년 11월 4일

지난 월요일에 오전에 미동북부 성령쇄신 세미나에 강의를 해주러 Stony Point의 돈 보스코 성모님 슈라인에 다녀왔습니다. 강의 시간에 맞추어 가기 위해 이른 아침 사제관을 나섰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가는 길에 던킨 도너스에 들려 커피 한 잔 사려 줄을 서서 기다리다 문득 예전 신학교 가기 전 직장 생활할 때 출근 하던 생각이 났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 기숙사에서 지내고, 신부가 되어 사제관에서 지내니 통학이나 출근을 안 해본 지도 26년이나 되었으니 까맣게 잊었던 추억이었습니다.

아직 이른 아침 거리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분주하고 델리나 베글 가게는 아침을 해결을 위한 사람들로 분주하고…….이른 아침의 고요함은 시간을 재촉하는 발걸음으로 깨어져도 아직은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마시며  출근하는 느낌이 뭔가 새롭고 싱그러운 설렘으로 커피 향과 함께 차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출근하는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피의 그윽한 향을 즐기며 Whitestone Bridge에 도달하니 출근하는 차들로 꽉 막혔습니다. 굼벵이 기어가듯 아주 천천히 다리를 건너다보니 다리가 출렁거림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어느새 시계를 보기 시작하면서 답답함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여유로움은 어느새 조급함으로 바뀌고 설렘은 걱정으로 바뀌면서 출근의 싱그러운 설렘은 사라져버렸고 짜증과 답답함이 몰려오면서 후회합니다. “내가 왜 이 시간의 강의를 수락했지?” 옛날 기억, “출근길은 지옥이다.”가 떠올랐습니다.

긴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꽉 막힌 고속도로를 벗어나 팰리사이드 파크웨이로 들어서니 탁 트인 길가로 단풍이 펼쳐지니 답답함은 다시 시원함으로 변하고 출근에 이런 재미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조변석개보다더 빠른 변덕이 한 두 시간 안에 일어났습니다. 스스로 참 변덕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단풍의 풍광은 역시 아름다웠습니다.

겨우 두시간 남짓한 아침 여행에 많은 감정 변화가 있었지만 결국 제시간에 맞추어 목적지에 도착하면서 생각합니다.예수님을 따르는 것도 이러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고개 끄덕이며 “맞습니다.”하고 고백하면서 정작 그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면 처음에는 가슴 뿌듯해하다가도 이내 힘들어하고 지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냉담하고, 또 적당히 타협합니다.

지난주일 복음(마태 10: 46-52)에 예수님은 바르티메오라는 눈먼 거지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그 눈먼 거지의 절대적인 믿음이 그를 구원했다고 알려주십니다. 그 눈먼 거지의 소원은 당연히 눈을 떠서 어둠에서 벗어나 빛을 다시 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둠에서 벗어나 빛을 보는 것은 기쁨이면서도 또한 고통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은 더러움 속에서도 깨끗함을, 추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는 지혜를 주고그리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리고 그 깨끗함과 아름다움과 빛이 더 깨끗하고 더 아름답고 더 밝게 빛나게 하는 하느님의 삶에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명하십니다.

믿는 이의 삶은 그런 것 같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너무힘들어 쓰러질 것 같아 쉬기도 하고 가끔은 그 길을 벗어나 더 빠른 길을 찾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시 돌아와 원래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삶, 그것이 바로 우리 믿는 이들의 삶입니다. 그 길은 좁고 거칠지만, 더 많은 이들이 함께 더불어 가다보면 좁은 문을 지나기 쉬워지고 걸음걸이는 가벼워질 것 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오늘 11월 첫째 주일 복음(마태 12: 28-34)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의 믿음의 길을 일러주십니다. 모든 하느님의 법은 사랑이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에 가는 길이라고 알려주십니다.

사랑은 단순히 감정 호르몬 작용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의 결과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바로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눈먼 거지가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믿은 그 믿음. 바로 그 믿음이 바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하느님을 믿고 신뢰할 때 그 말씀에 순명할 수 있고 그 순명은 바로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들국화에게서 들국화의 수수한 아름다움을 발견해야지 장미의화려함을 찾으려 하면 실망만 할 뿐입니다. 이처럼 스스로를 사랑할 때에도 스스로의 아름다움보다 남들에게 찾은 아름다움을 자신에게 찾으려고 하면 오히려 자격지심과 질투의 미움으로 가득 차 버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도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똑같지 않습니다. 서로 비슷함과 다름이 공존합니다. 비슷함의 편안함과 다름의 다양함을 그대로 존중하면 우리는 함께 기쁘고 서로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비슷함을 싫어하고 달라서 비난하면 우리는 서로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갈 길 잃고 방황하는 나그네일뿐입니다. 우리의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는 멀어질 뿐입니다.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길은 언제나 녹록하지 않습니다. 지치고 절망스럽고 힘들어서 멈추고 싶을 때 잠시 앉아 쉬며 목적지를 떠올리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 길은 언제나 힘들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그 길 자체의 즐거움과 설렘 그리고행복이 있습니다. 그 길은 사랑입니다.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사랑할 때 우리의 목적지 하느님의 나라는 그리 멀지 않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일 또 월요일이 시작됩니다. 일상의 사소함에서 우리는 지치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합니다. 그 사소함의 가장 중심에 사랑이 있으면 힘을 얻고 사랑이 없으면 지치고 힘들어집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아주 사소한 것에 아주 사소한 일에 듬뿍 주는 하루가 되길 기도드립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넉넉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의 얼굴은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만추의 단풍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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