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사람은 차별을 해서는 안됩니다

2018년 9월 9일

오늘 마르코 복음사가는 주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들을 고쳐주시는 기적을 얘기하면서,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이라는 존재가 어떤 분 이신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치유 기적을 목격하면서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을(일독서) 떠올리면서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라고 놀라 말하는 것에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가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구세주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훌륭하다”라고 표현한 것은 그리스어로는 “보기 참 좋았다”라는 뜻입니다.  “보기 참 좋았다”라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창조물을 보시고  “보기 참 좋았다”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같은 표현을 씀으로써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일들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외면받고 사는 사람들을 누구나 차별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감싸 안아주시면 그들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아픔을 치유해 주시면서, 죄까지도 당신의 자비로 용서를 해주심으로써, 버림받은 모든 이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하신다는 것을 오늘 복음에서 묵상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주님을 믿는 이들은 서로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세속적인 겉모습을 보고 가진 자와 없는 자를 차별대우하는 것은 주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잘못 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삶을 살든지, 무슨 직업이든, 직책이 무엇이든, 권력이 많든 없든, 부자든 가난하든, 우리 모두는 한 가족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주님의 식탁에서 성체를 다 같이 모시는 형제, 자매이기 때문에 주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동등합니다.

우리의 삶의 가치 기준은 세속적인 소유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묵상하게 됩니다. 세례를 받고 주님의 식탁에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의 기준은 차별 없이 주님께서 사랑을 베푸시듯 사랑의 베풂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배품은 사람에게 먹을 것을,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주는 사랑, 외로운 이들에게 위로를 해주고, 버림받은 이들을 감싸주는 사랑, 상처받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치유의 사랑을 주고, 잘못된 것을 하느님의 정의로 바로잡고 쇄신할 수 있게 기도와 단식의 희생을 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지켜나가야 할 주님의 기준일 것입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가장 근본적인 주님의 사랑의 기준에서 우리가 이탈했을 때마다 주님께서 누군가를 선택하시어 교회에 쇄신을 가져다주셨습니다. 그 구군가가 한 개인일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때는 수도회였을 때도 있었습니다. 성령 하느님의 이러한 역사는 지금 현재도 계속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최근의 일어나는 교회 안에 폭풍이 한차례 일어나는 소식을 들으면서, 주님께서 모든 평신도을 통해서 교회가 신앙의 가장 근본인 사랑의 기준으로 돌아가게 이끌어주시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묵상하게 됩니다.

각 개인의 쇄신은 기도와 희생, 단식과 회개 그리고 용서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교회의 쇄신도 우리 모두, 특히 수도자, 성직자, 주교 그리고 교황님의 기도, 희생, 단식 그리고 가장 중한 교회의 지도자들이 회개하고 용서를 청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묵상해 봅니다.

교회안에 어떤 폭풍이 일어났어도 주님께서 교회의 쇄신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해오신 차별 없는 사랑을 묵상하며, 주님께 모든 피해자들이 당신 자비와 사랑 안에서의 치유 해주시고, 주님께서 변함없는 성실한 신앙으로 교회를 믿고 사랑으로 따르는 우리 평신도 여러분들께도 마음의 치유를 해주십사 기도드리며,  우리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받으므로 새로 태어날 수 있는 은총을 또한 허락하여 주시고, 평신도 여러분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게 성령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게 여러분 모두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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