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2021년 1월 3일

 새해 2021년을 맞아 주님의 은총이 가득한 한 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우리에게 오신 주님의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며 인사드립니다.

  매년 새해를 보내는 세밑에 흔히 말하는 사자성어는 “다사다난”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이 일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그런데 지난 2020년은 특히 너무나 두렵고 힘든 한 해였습니다. 우리 본당에서도 20분 이상의코로나바이러스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분들이 주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슬픔으로 먹먹했던 사순과 부활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하였어도 달라진 것은 없었으나 우리 공동체 식구들을 다시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습니다. 불안한 가운데에 잃었던 웃음을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함께 더불어 산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 삶의 모습인지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새로운 희망의 기다림을 통해 주님 성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습니다. 우리의 희망의 이유인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가 기뻐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주었지만 불안감은 아직도 우리 가슴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제 새해를 시작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종식을 맞이할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고 매일 더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맞고 바이러스의 두려움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바이러스로부터의 자유를 선포할 시간이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시작한 2021년을 성모님의 전구로 모두가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고 자유로워질 때 서로 두 손 꼭 잡고 허그하며 인사하고 커피 한 잔과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을 맞이 이 꿈이 주님과 함께 현실이 될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의 모든 민족들의 빛으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 현존을 확인하는 날입니다. 동방 박사가 먼 길을 찾아 경배한 아기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엠마뉴엘!

  주님 공현은 말 그대로 주님께서 공공에 그 정체를 드러냈다는 뜻입니다. 공현축일은 원래 1월 6일이지만 이날을 의무 축일로 지내지 않는 곳은 1월 2일과 1월 8일 사이의 주일에 지내게 됩니다.

  1월 6일은 주님 공현 축일은 또 다른 크리스마스로 삼왕축일이라고도 하며, 이날 세 명의 동방박사가 주님을 알현하며 세 가지 선물(황금과 유황과 몰약)과 관련하여 서로 선물을 나누며 성대하게 지냈습니다.

  1월 6일 전야가 바로 성탄의 12일째 되는 날로 12일간의 성탄이란 표현이 나온 배경입니다. 성탄 캐롤, “12 Days of Christmas”가 바로 이런 전례적 배경에서 나온 캐롤입니다.

  이날을 또 동방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세례 축일로 지내기도 합니다. 이렇듯 성서에 동방 박사가 아기 예수님을 알현하고 선물을 드리며 예언을 한 사건의 정확한 날짜가 나온 것은 아니어서 전승으로 전해지는 날들을 정해서 그 축일을 지냅니다.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도 그러한 연유로 정교회와 다른 전례를 지내지만 그 영성만은 서로 공유하며 구세주 예수님의 공현을 중요시합니다. 이는 바로 성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 풍습에도 아이가 태어나면 삼칠일은 남들과 격리를 시키어 아이를 보호하고, 백일이 되면 이웃들에게 아이를 공식적으로 소개하며 잔치를 벌입니다. 그리고 첫 돌이 되었을 때 또 한 번의 잔치로 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인격체로서의 존재성을 드러내고 세상의 축하를 받습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이와 비슷하지만 한가지 아주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세상 구원의 역사적 사명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성모 마리아를 통해 세상에 태어난 존재적 목적은 인류 구원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존재는 누구에게는 구원자로서 기쁨과 희망의 이유가 되지만 누군가에는 적이 되어 고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동방박사는 요셉에게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라고 알려줍니다.

  구원자의 숙명은 루카 복음 2장의 주님의 성전 봉헌 때 시메온의 예언처럼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루카 2: 34)

  구원은 세상의 수많은 난관을 뚫고 하느님의 뜻을 관철 시키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와 하느님의 지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욕망과 하느님의 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힘이 있는 자에 의해 움직이지만, 하느님의 나라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움직입니다. 따라서 세상이 배타적이고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세상이라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타적이고 자비와 나눔의 나라입니다.

  이처럼 두 세계는 다릅니다. 그렇기에 세상적으로 가진 자는 나누기를 싫어하고 나눔은 손해라고 믿고 잘못한 자를 단죄하고 실패한 자가 도태됩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가진 이가 나눌 줄 알고 힘 있는 이가 약한 이를 돕고 잘못한 이를 용서할 관용이 있고 슬픈 이를 위로하고 실패한 이에게 용기를 줍니다.

  오늘 주님의 공현은 하느님의 구원이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입니다. 또한, 우리 믿는 이들이 이 시대에 주님 공현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주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것은 우리의 믿는 이들의 사명입니다. 오늘의 공현 축일은 오늘 하루의 축일이 아니라 새해 한해 내내 우리를 통하여 기쁨과 희망을 나누는 축일입니다.

  즉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말씀에 맞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주님의 말과 행동을 닮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인간적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과 같이 하느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사실을 믿고 이 믿음과 항상 소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소통이 바로 우리의 기도입니다.

  안다는 사실과 지속적으로 소통을 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아는 사실을 잊을 수 있지만,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과 언제나 소통을 하면 잊지 않고 오히려 말씀에 따를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성모님이나 요셉성인처럼.

  기도는 소통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와의 소통이고 성자 예수님과의 소통이며 성령과의 소통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하며 그 안에 살아감을 확인하는 통로입니다.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기도하고 우리의 두려움을 하소연하고 우리의 약함을 고백하며 함께 더불어 같이 믿는 이들이 힘을 합하는 용기와 지혜가 바로 기도의 힘입니다. 각 개인의 기도가 모여서 공동체의 기도가 되고, 그 공동체 기도의 힘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 하느님의 힘이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두려움과 고통 속에 있는 현재 우리는 우리의 신앙으로 이 고통을 극복하고 이겨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팬데믹이 우리의 신앙을 잃게 하기보다는 더욱 더 강하게 하고 신앙의 신비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가 희망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백신이 아닙니다. 현 백신은 당면한 문제만 해결하지만, 신앙은 다가오는 어떤 고통도 이겨낼 힘을 줍니다. 그러니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고 희망의 기다림에 지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새해 2021년 신앙의 신비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벅찬 가슴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길 기도드립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