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2020년 11월 16일

오늘은 연중 33주간 월요일 화창한 날씨에 파란 하늘이 눈부시지만 바람은 겨울이 곧 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람에 휘청거리지만 잘 버티는 빈 가지에서 다가오는 겨울을 꿋꿋이 버티겠다는 각오가 엿보입니다.

뉴스에서 지속적으로 2차 팬데믹의 위험을 경고하고 이에 대비하라고 말하면서도 또 백신 개발이 곧 완성될 걸이라는 희망적인 뉴스가 나와 일희일비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해야하는 것은 희망을 갖되 매일 조심하는 것입니다.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입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과 의 만남에서 더욱 조심해야합니다.
오늘의 복음은(루카 18: 35-43) 눈먼 이가 예수님께 눈을 고쳐달라고 애원하여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지난 토요일의 복음인,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18장의 끝 부분입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끊임없는 청원에 과부의 청을 들어주었다는 비유로 하느님께 끝없이 하는 기도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기적도 절실히 청원하는 눈먼 이의 눈을 고쳐주십니다.
절실하고 지속적인 기도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오늘의 기적은 다른 공관 복음에도 조금씩 다른 서술로 나오는 데 공통점은 모두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들아가기 직전에 길 목인 예리코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길목에 위치한 오래된 도시 예리코에 가가이 이르셨을 때에 군중의 소리를 들은 구걸하던 눈먼 이가 예수님이라는 말에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18: 38)라고 외칩니다. 이에 예수님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시고 눈을 뜨고 싶다는 말에 바로 이렇게 말씀하시며 바로 고쳐주십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42)
다시 보게 된 그 사람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르코 복음은 눈먼 이의 이름을 ‘티메오의 아들 바르티메오’라고 분명히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 예수님을 따랐다는 말로 미루어 볼 때, 성서 학자들은 예수님 사후에 주요한 일을 한 제자가 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많은 기적 이야기에서 그 당사자의 이름을 직접 성서에 밝힌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에서만 그 눈먼 이, 바르키메오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마르코 10: 50)라고 서술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가장 적극적으로 예수님께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태오 복음에는 마르코 복음과 같이 예리코에서 떠날 때 일어난 사건인데, 여기서는 구걸을 하는 눈먼 이들이 둘입니다. 둘이 예수님이라는 말을 듣고 “주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마태 20: 31) 라고 청하고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소원대로 눈을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에 반해 오늘의 복음인 루카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일어난 사건으로 그 사건의 시점이 다른 두 복음과 다릅니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서 들려주는 예리코에서의 행적은 떠날 때 치유해준 눈먼 이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과 일행은 예루살렘의 바로 직전의 도시로 예루살렘으로의 입성에 더 중점을 두며 이 기적을 서술합니다.
영적 눈을 뜨게 된 눈먼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영적 동참이면서 증인이 되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중심적 영성입니다—믿는 이들의 파스카 신비에 동참!
그런데 루카 복음은 예리코에 들어가시면서 이 기적을 행하시고 다음에 제리코 시내를 군중들의 환영을 받으며 지나시다 세관장 자케오를 만나  그의 극적인 회개를 이끌어 냅니다. 이로서 마치 예리코 온 도시를 예수님께서 품으셨다는 느낌이 들게합니다.
따라서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은 영적은 눈을 뜬 모든 믿는 이들이 다윗의 자손, 즉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는 반면 루카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모든 이를 포용하며 예루살렘으로 초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이는 이 복음을 저술한 루카 성인의 의도가 잘 엿보이는 서술 방식입니다. 다시 말하면, 루카복음의 예수님은 이방인이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도 하느님의 자비로 포용하고 감싸는 인자하신 구원자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눈먼 이의 애원이며 매 미사의 시작에 우리도 부르짖는 애원,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가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 간청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다.”는 대목이 가슴에 메아리 칩니다.
이 부르짖음에 아직도 미숙한 우리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절실하고 간절한 기도를 곧 들어주실 것 같습니다. 우리의 어둡고 무거운 세상이 예수님의 자비로 밝게 빛날 것 같습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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