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믿음

2018년 10월 28일

한국에서 학창 시절 때에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체험들이 있습니다. 음성 꽃동네에 다녀온 일입니다. 학생 때는 세 차례를 다녀왔는데, 그중에 한 번은 봉사활동을 하였고, 두 번은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중에 연수원 프로그램이 기억나는데, 장애체험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피교육자들을 그룹으로 나눠서, 한 그룹은 팔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다른 그룹은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또 다른 그룹은 앞을 보지 못하도록 붕대로 묶었습니다.

그런 상태로 약 2시간이 넘게 연수원 근방을 돌고, 산길도 오르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앞을 보지 못하는 그룹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때 답답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오후 반나절 동안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고, 다른 친구들에 의지해서 움직였던 것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때 처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 헤아려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을 보지 못해서 답답한 점도 있지만, 붕대를 풀고 난 후 다시 보게 된 주변 환경을 보면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장애를 앉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디서 기쁨을 얻어 살아가고, 어떻게 예수님을 찾고 믿음을 지니며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늘 소외된 이들의 친구셨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상기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다니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소외된 사람들 가운데에서 눈먼 이를 만나십니다. 그의 이름은 바르티매오입니다. 보통 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되는 경우는 드문데, 그의 아버지와 그의 이름이 밝혀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예리코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태생부터 눈이 먼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 청하기를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출신성분이 어찌 되었든, 그는 지금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그곳을 지나가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칩니다. 그러자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사회에게 어떤 대우를 받는지 짐작게 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홀대하는 사람들의 야박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바르티매오는 더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부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자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 갑니다. 이 장면에서 바르티매오가 지닌 용기와 믿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걸인에게 있어서 겉옷은 그의 전 재산과도 같습니다. 마땅한 숙소가 없는 걸인이 겉옷마저 없으면 길거리에서 얼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를 불렀을 때, 그는 그 겉옷을 버리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갑니다.

이와 더불어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이 사람들은 바르티매오가 처음 예수님을 부를 때 그를 꾸짖었던 이들과 다른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르티매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아마도 앞을 볼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모를 바르티매오가 예수님께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을 것입니다.그런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인해 바르티매오의 용기와 믿음이 구원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보게 된 바르티매오는 그 길로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예수님의 공동체는 겉모습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분에 대한 믿음을 지닌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소외된 모든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모습을 지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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