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2020년 12월 27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시기에, 가정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하루 일과 중, 집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여, 가족 구성원들이 전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시기는 가족들과 서로 친밀감을 쌓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합니다. 최근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데, 가족들이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며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주님 탄생 대축일을 지낸 다음 첫 번째 주일에 성가정 축일을 지냅니다. 이날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이 어떻게 하느님께 대한 신심을 지녔는지 본받고자 제정되었습니다. 매년 성탄 시기가 다가오면 가장 눈에 띄는 구유를 떠올리며 성가정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묵상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도록 합시다.

  오늘 복음은 마리아와 요셉이 율법에 따라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기쁨에 이어서, 그분께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특히 시메온의 찬양은 예수님을 통하여 인류가 얻게 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의 탄생과 더불어, 이 가정이 얼마나 하느님의 축복을 가득히 받고 있는지 상기시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이 사건 전에 있었던 여러 일들을 떠올려보면, 이 가정이 겪어온 일들이 순탄치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이후의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호적 등록을 하기 위하여, 나자렛을 떠나 예루살렘을 가는 길에,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나자렛에서 예루살렘은 굉장히 먼 거리이고,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출산하신 뒤에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갔다가 예루살렘을 또다시 방문하여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부담이 크기 때문에,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할 때까지 줄곧 베들레헴이나 예루살렘에 머물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기까지의 시기가 순탄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출산할 곳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고, 그들을 호의적으로 받아준 곳도 없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도 낯선 곳에서의 여정은 분명 인고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부부가 서로 다툴 수 있는 요소가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피곤할 때 유혹도 크기 마련이고, 조그마한 것에 더 민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젊은 두 부부가 어떻게 고된 시기를 이겨나갔을지 떠올려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나자렛에서 먼 길을 오느라 지쳤고, 편히 쉴 곳이 없어 피로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음식은 제 때에 먹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가운데에 처음부터 호적 등록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예루살렘으로 가서 호적 등록을 마쳤을 것이고, 오늘 복음 전의 내용에 나타나듯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지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할례도 베풉니다. 그리고 이 여정의 끝에, 오늘 복음의 내용에 따라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봉헌하기 전에 하느님께 바칠 제물을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여정을 자세히 떠올려보면,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는 장면은 단순히 때가 되어 예수님을 안고 성전을 방문한 사건이 아님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봉헌하는 모습 안에는 성전에 오기까지의 고단한 여정이 자리하고 있고, 험난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고 하느님께 감사드리기 위해서 제물과 함께 아들을 봉헌하려는 그들의 신심이 녹아있습니다. 이 장면 속에서 성가정은 기쁨과 평화로만 가득한 모습이 아니라, 온갖 역경 속에서 하느님을 찾는 신실함을 지닌 가정을 뜻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성가정을 이루는 것은 눈에 보이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가정이라는 의미 안에는 기쁨 가운데에서뿐만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을 찾는 신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마주하고 있는 이 어려운 시기 속에서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족들과 함께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단순히 가족들과 화목을 도모하는 차원을 넘어서,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고난을 이겨낸 데에는 분명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길을 인도하신다는 깊은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직 사회의 혼란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악화되어 가는 이 시기에 가족들이 서로 의지하며 하느님 안에서 올바른 뜻을 찾아나 갈 수 있도록 성가정의 모습을 다시 새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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