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5주간 토요일

2020년 9월 26일

오늘은 연중 25주간 토요일 9월 26일 흐리고 습하여서 더운 느낌이 드는 날입니다.

그럼에도 가을은 무르익어 갑니다.
오늘 미사의 첫째 독서도 코헬렛서의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은 “허무로다, 허무!” 입니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입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다 하더라도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지혜가 있으면 일상의 삶이 좀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릴 적 이 우화에서 교훈은 개미처럼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베짱이도 부자로 잘 살 수 있는데 구지 개미처럼 일만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던집니다.
알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조신한 여자가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여겨졌고, 자신의 소신을 말하는 여자는 대가 세고 팔자가 드셀 것이라고 경계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신의 소신을 말할 줄 아는 여자를 능력 있는 사람이고 말합니다.
세상은 변해갑니다. 어떠한 행동이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가는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처럼 젊은이가 젊은 시절을 즐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눈이 이끄는 대로 가라고 말하면서도 조건은 하느님의 심판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조 코헬렛 11: 9)
마치 오래된 유행가 가사 같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 화무는 심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무엇을 하던 우리가 중요시 여겨야 하는 것은 바로 그 행동의 목적입니다. 마음이 원하고 눈이 이끄는 것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있으며 어떤 결과를 주는지 생각치 않고 그저 마음과 눈을 따르다 보면 어느새 길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어디로 가고있는지 왜 가는지 등의 중요한 질문에 답을 못하게 되면 길 잃은 나그네처럼 떠도는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목표와 그 목표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있으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않을 것입니다. 또한 남들이 다 가는 큰 길을 간다고 해도 자신의 삶의 목표와 의지와 신념이 없이 따라가는 길이라면 이미 길 잃은 삶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삶은 흥망성쇠가 있습니다. 잘 될 때가 있으면 안될 때가 있고, 흥할 때가 있으면 망할 때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왕성한 삶을 지나면 점점 쇠약해지는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며 죽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의 진리를 생각하며 과거의 교훈으로 내일의 희망을 찾고 오늘 최선을 다하는 삶이 바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부지런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우직하게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우직하게 일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일만 하게 되는 경우이거나 일 중독에 걸린 경우입니다. 두 경우 모두 건강하지 못한 삶입니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유희의 인간’ 또는 ‘놀이 인간’이라고 표현하는 인문학적 관점입니다. 사람은 유희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려 하고 이를 목적으로 노동 하는 것이라는 관점입니다. 현대인의 삶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노동 자체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유희가 노동의 목적이 됩니다. 그 유희는 단순히 퇴폐풍조의 향락이 아니라 놀이입니다. 함께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갖는 데서 힘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노동과 놀이의 조화가 오히려 삶을 넉넉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행복해지고 싶어합니다. 그렇기에 열심히 일하고 더 좋은 직업의 조건이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더 좋은 직업이고 행복의 조건인가? 하고 반문을 던지면 결코 그렇지도 않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것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할 수 있을 때 자신의 가치관에 성취감이 더해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는 장인인 됩니다. 우리는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장례를 생각하며 가르치는 교훈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는 것’이라면 참 안타까운 일인 것 같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성공이라고 가르치면 우리는 하느님을 잊게 됩니다.
하느님을 잊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 삶의 방향을 잃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돈이라는 신기루를 쫓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가오는 당신의 미래를 말해줍니다. 그 미래는 단순히 운명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길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이름에 영광이 되는 세상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는 길을 택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그 길을 가십니다.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입니다. 그 여정의 끝에 오늘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사람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예고하신 것처럼 수난과 죽음의 길을 가십니다.
예수님의 길의 목적은 단호합니다. 예루살렘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사람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 나무 위에 매달리고 나서야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은 그 아들을 다시 살리십니다.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바로 궁극의 세상 구원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고군분투하며 하루를 버텨냅니다. 이러한 노고로 인해 내일 우리가 하느님과 온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즐기는 시간 속에서 다시 힘을 얻고 다가오는 한주 또 버텨낼 것입니다. 나아가 그 힘든 일조차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바로 우리 삶의 결과로 말합니다. 세상적 평가 기준인 물질적 풍요를 넘어서 함께 더불어 사는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평가입니다.
개미와 배짱이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답은 하나입니다 개미가 될 때가 있고 베짱이가 될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나 개미이거나 베짱이인 삶은 길을 잃은 삶입니다. 그러한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면 행복의 의미를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스스로 “허무로다 허무…모든 것이 허무로다!”라고 고백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6일을 열심히 일하고 하루 당신과 함께 쉬라고 배려해주신 시간입니다.
이 번 주말 무거운 삶의 짐을 내려 놓고 주님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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