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8주간

2020년 11월 8일

오늘은 연중 28 주간 목요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입니다. 어제와 같이 화창한 가을입니다. 내일 비가 내린다고 하니 오늘의 날씨를 즐기는 것도 좋겠습니다.

오늘은 지난 2주전에 도착한 “새 수녀님(?)” 에제키엘 수녀님의 2주 수녀원 격리를 끝내고 자유(?)가 된 날이라 두 수녀님을 모시고 ‘성물 가게’를 다녀오다 짜장면을 점심을 먹었습니다. 두 분 모두 미국에서 처음 식당을 가보았는데 중국집이었습니다. 짜장면에 즐거워하는 모습에 함께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
이번 주 부터는 두 수녀님 모두 만나뵐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분 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누가 누구인지는 헷갈릴 것 같습니다. 헌(?) 수녀님은 유니타스 수녀님, 새(?) 수녀님은 에제키엘 수녀님입니다. 두 분의 건강하고 안전한 본당 사목 생활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어제는 김철희 시몬 신부를 대신해 새로운 보좌 신부님, 박효식 신부님이 도착하였습니다. 2주 후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신부님을 위해서도 기도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새로운 얼굴을 만남이 반가우면서 정들자 이별인 아가비타 수녀님도 그립습니다. 그래도 김 철희 시몬 신부님은 학업으로 우리와 함께 더 오래 있으니 다행입니다.
헤어짐이 안타깝고 슬프지만 만남이 반가운 것은 우리 삶의 모습입니다. 헤어짐은 슬픔은 만남의 반가움을 반감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지난 봄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갑작스러운 헤어짐이 슬프고 힘들지만 또 다른 만남으로 위로를 받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는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대게 소화 데레사와 구분하며 대화 데레사 또는 대 데레사라고도 불리우며 스페인의 아빌라에서 1515년 태어나서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 (St. Teresa of Avila) 라고도 불립니다. 유럽의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한참이던 시기에 태어나 교회 안에서의 영성 개혁을 주도한 분으로 많은 수도 생활과 영성생활에 관한 저술을 하여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교회의 학자로 1970년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선포되었습니다.
데레사 성인은 엄격한 수도 생활을 통한 완덕의 세계로 나가는 개혁을 카르멜 수도회에서 주도하여 반대하는 온건파와 교황님의 결정으로 완전히 분리되 “맨발의 카르멜회”를 독립하여 지속적으로 교회 안에서의 개혁을 주도하며 가톨릭 교회의 쇄신을 꾀하였습니다.
그러나 엄격하고 극심한 고행을 통한 수도 생활로 빈틈이 없으면서도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화중의 하나는 수도회의 한 수녀님이 기도 중에 자꾸 잠이 쏟아지자 데레사 원장수녀님께 자문을 구합니다. “밤 기도 할 때마다 잠이 쏟아지는 데 어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에 “수녀님, 걱정하지 마세요. 기도하다 잠이 드는 것은 하느님의 품에서 잠든 것과 같습니다.”
가끔 신자들이 찾아와 위와 같은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저는 데레사 성녀의 일화를 들려줍니다. 기도하며 분심이 드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면 됩니다. 그 분심 속에도 하느님은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기도하다 자는 것은 아버지의 말씀을 듣다 잠든 아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잘못될 것을 걱정하여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다 열심히 하며 실수하고 실패하는 것이 훨씬 값어치가 있습니다.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우고 한 발 더 가까이 하느님께 다가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실패나 실수를 책망하기 보다는 위로하고 용기를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 하느님이십니다.
오늘의 복음도 어제와 같이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불행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의 문제는 신앙심이 아니라 율법이라는 미명아래 자신의 교만한 아집과 집착으로 용서와 화해를 모르기 때문이며 자신들을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염려나 걱정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들어주는 것입니다. 실수를 두려워 하지 말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실수나 실패를 패배자로 낙인 찍는 것이 아니라 용기와 위로를 주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 스스로가 바리사이처럼 아집과 집착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내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봐야겠습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질문이 생각납니다. “WWJD” 즉 “What would Jesus do?” 어떤 일을 하거나 말을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할까?” “예수님은 어떻게 말하실까?” “예수님은 어떻게 하실까?” 등등
그러면 예수님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편 98(97),1.2-3ㄱㄴ.3ㄷㄹ-4.5-6(◎ 2ㄱ)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 비파 타며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비파에 가락 맞춰 노래 불러라. 쇠 나팔 뿔 나팔 소리에 맞춰, 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환성 올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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