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1주간

2020년 8월 30일

오늘은 연중 21주간 토요일 8월 29일 성 세례자 요한 수난 기념일입니다. 아침부터 비를 동반한 구름이 하늘을 덮어 흐린 아침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의 성인 세례자 요한의 축일은 6월 24일이며 이날은 바로 세례자 요한의 탄생일 입니다.

대개 성인의 축일이나 기념일은 그분의 죽은 날로 정하는 데 탄생일을 축일로 하는 분은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세례자 요한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복음(마르코 6: 17-29)의 내용처럼 헤로데 왕에 의해 처참히 죽어간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세례자 요한 성인은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하는 구약시대의 마지막 예언자이며, 구세주가 오는 길을 준비하기 위해 구세주에 앞서 온 하느님의 선구자로서 신약시대를 연 분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서기 27년경 까지 광야에서 은수자로 살다가 요르단 강 지역을 다니며 회개를 중심으로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를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군중이 세례자 요한을 따랐고 그의 가르침에 따라 세례와 회개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세례자 요한은 자신들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가르키며 우리가 기다리던 구세주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세례를 원하는 예수님께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라며 말렸지만 예수님께서 원하시니 세례를 주었습니다. (참조 마르코 3:14)
세례자 요한은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 밤낮으로 단식기도 하신 후 공생활을 시작한 예수님의 행적에서 잠시 자신이 기다리던 구세주가 맞는지 제자들을 시켜 알아오게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를 강조하는 데 예수님은 회개를 통한 용서와 사랑을 강조하기 때문에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법과 관점에 잠시 흔들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께서 말씀과 기적으로 보여준 결과를 보면 알 것이라고 이릅니다.
후에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 왕의 부도덕적인 결혼을 나무라자 그의 아내의 계략으로 참수형을 당해 죽습니다. 바로 오늘이 그분의 죽음을 기념하는 기념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구세주로 오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마태 11: 11)
그리고 오늘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그분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다시 모여 인간적으로 양분이 되었던 새로운 신앙 쇄신이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회상은 로마의 식민지였으며 괴뢰 왕정이 헤로데 왕이 다스리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엄격한 율법 정신을 강조하여 경직된 사회상을 보여주며, 예루살렘에서는 사두가이들은 성전 중심의 세속적 성공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시기에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 강 동쪽 광야에서 백성의 회개를 강조하며 하느님 말씀 중심의 삶의 모습으로 변화할 것을 설교합니다. 그 회개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고, 그 새로운 세상, 하느님 중심의 ‘하늘 나라’를 예수님께서 여실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세례자 요한처럼 예수님께서 이 시대의 혼란에서 구원하실 구세주로 오심을 준비하는 사람들임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말씀 생활이 바로 그 길을 열고 준비하는 작업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단지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위한 신앙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이 세상의 하늘 나라를 위한 신앙임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평화는 단순히 큰 권력을 갖은 위정자들의 몫이 아니라 바로 작지만 강한 우리 믿는 이들이 초석이 될 때 가능함을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활을 통해 설교하시고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파스카 신비를 통해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오늘도 우리 각자는 세례자 요한처럼 회개하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용서하며 우리 사회의 평화를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사회적 의무이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의 자유에는 우리 신앙의 의무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의무는 배려와 자비이지 비판과 단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억울하고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 분의 말씀과 선구자로서의 역할은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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