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일

2022년 2월 20일

오늘 제1독서의 다윗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자신을 원수처럼 여기며 죽이려고 군대를 끌고 광야를 뒤지고 있는 사울을 계속해서 살려주는 다윗의 모습이 바보같이 여겨지기도 하고, 결단력이 없는 리더로 보이기도 합니다. 다윗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죽을 위험을 넘겼기에, 다윗과 함께 있던 장수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울을 죽이겠다고 다윗에게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사울이 기름부음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손을 댈 수가 없다고 거듭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윗의 태도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과 고도의 정치적 계략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사울이 하느님께 기름부음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 손을 댈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느님께 기름부음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께 특별히 선택되어 보호를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때문에 사울에게 손을 대면 하느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믿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께 기름부음받은 다윗은, 자신보다 먼저 기름부음받은 사울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행위를 통해서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기름부음받은 이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줌으로써, 훗날 자신이 임금이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도 하느님께 선택받아 기름부음받은 자신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기억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기의 저자는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와 완전함을 어렴풋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다윗 시대에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임금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 보여주었기 때문에, 다윗의 믿음과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을  상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다음부터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더 가깝게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동을 통해서 하느님을 직접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를 기억하여 실천하면서 하느님과 더욱 가깝게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 되는 덕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과 같이 실천하기 힘든 말씀과 마주하게 되면,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천해야 하는 우리 신앙의 첫 번째 덕목이 불편하게 느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사람에게 잘해 주라는 말까지는 그래도 받아 들일수 있을 것 같은데, 나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학대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한쪽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도 내밀고, 겉옷을 가져가는 자에게 속옷도 내어주고, 달라고 하는 자에게 다 주고 되찾으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그대로 다 지키고 살면 세상에서 바보 취급 당하면서, 거리에 나앉기 딱 좋은 말씀이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말씀은 듣고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싶다는 생각에 앞서서 피하고 싶고 다른 뜻을 먼저 찾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저처럼 유혹과 마주하신 분들이 있다면, 오늘 복음의 내용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 이와 유사한 상황이 언제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들을 되새기면서,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마친 뒤에 제자의  배신으로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까지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환호하던 백성들이, 돌변하여 당신을 향해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당신을 팔아넘길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이 잡혔을 때 모든 제자들이 당신을 떠날 것도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 으뜸 사도인 베드로는 세 번이나 자신을 모른다고 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사람들에게 메질과 조롱을 당하면서, 얼굴에 침을 맡고 주먹으로 맞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에 못 박혔을 때, 군사들은 시편 22,19의 말씀처럼 제비를 뽑아 예수님의 겉옷을 나누어 가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께 맡기신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당신의 몸과 피를 남겨주시며 성체성사를 제정하셔서,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며, 자비가 넘치는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자신의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남겨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다시 한번 기억해보도록 합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하느님의 자비를 다시 한번 기억할 수 있도록 오늘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잠시 뒤에 이어질 성찬례 때, 빵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 모욕과 고통 중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결국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달라고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느님  아버지와 같이 자비로운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청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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