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일

2022년 6월 26일

 오늘은 연중 제13주일로 유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난 하지를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여름입니다. 그런데 날씨는 여름치고 서늘하고 일교차가 큰 날이 지속되다 오늘은 초여름의 날씨를 보입니다. 이에 감기에 걸린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오늘도 지난 두 주일과 같이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지난 주일은 제임스 마사 주교님의 주례로 18명의 주일학교 9학년 학생들이 견진 성사를 받았습니다. 견진 성사를 통하여 영적 성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더욱 견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길 기도드립니다.

  오늘은 남 희봉 벨라도 신부님의 수품 25주년 기념 미사와 연회를 개최합니다. 11시 교중 미사 중에 기념 미사를 하고, 미사 후 친교실에서 모두 함께 음식을 나누며 축하 공연과 함께 축제의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하여 남 신부님의 은경축을 축하하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지난 유월 첫째 주일에 김학범 알퐁소 메리놀 신부님의 주례 미사에서 당신의 수품 25주년을 맞이하며 소회를 강론 시간에 들려주셨는데, 신부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신자들의 기도와 성원이 큰 힘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선배 신부님의 조언 중 하나가 ‘신부가 되는 것도 어렵지만 신부로 죽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처럼 죽는 날까지 신부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믿는 이들의 기도와 성원이 절대적입니다.

  오늘 남 신부님의 은경축 미사와 축하연을 통하여 우리 청년들과 아이들의 가슴에 사제 성소의 씨앗이 싹트길 기대합니다.

  오늘의 복음은 사반세기의 사제생활을 맞이하는 남신분의 은경축에 알맞은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전교 여행을 시작하려 할 때 어떤 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루카 9: 57) 사제의 길이 바로 스승님을 따라 어디든 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나아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길이기도 합니다.

  성소의 길은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은 어디든 따라가는 여정의 길입니다. 이 길을 예수님은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9: 58)

  성소의 길은 세상적 성공을 위한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귀영화의 편안한 길도 아닙니다. 권력과 세도의 길도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이러한 길을 위의 예수님의 말씀이 확실하게 대변하고 있습니다.

  사제 성소의 길은 가난한 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고픈 길은 아닙니다. 권력과 세도의 길이 아니지만 신앙의 존경을 받고 말씀의 권위를 갖는 길입니다.그 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길처럼 구원의 길을 이끄는 지도자입니다. 이는 바오로 성인의 말씀처럼 “육의 욕망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는 계명을 살아가는 삶입니다. (참조 갈라티아 5: 14-17)

  또한 자신의 가족의 아버지가 아니라 공동체 가족을 이끄는 아버지의 길입니다. 이는 자신의 가족을 뛰어넘는 공동체 가족을 위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라고 초대를 하였는데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자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9: 60)

  나아가 예수님은 또 이렇게 표현합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9: 6) 이는 여정의 길은 앞으로 가는 길이지 뒤를 돌아보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 후회의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때에 롯의 아내의 경우와도 같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말에도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고, 이에 소금 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첫 독서는 엘리샤가 엘리야의 부름에 부모님께 작별 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말하고 부모님을 찾아뵌 다음 농사를 짓던 소를 잡고 쟁기를 태워 고기를 구워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 엘리야를 따라나섭니다. 이는 과거에 대한 미련을 없애기 위한 단호한 결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길은 앞을 향한 여정입니다. 후회의 길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미련의 길이 아닙니다. 미련과 후회는 앞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서는 유혹입니다.

  꼭 사제 성소가 아니더라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믿는 이들의 신앙 성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면서 과거의 삶에 미련을 갖는다든가 미신에 기웃거리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앞으로 함께 가는 여정의 동반자입니다. 사제는 그 여정의 길잡이입니다. 마치 모세의 영도 아래 이스라엘이 광야를 헤매면서도 약속의 땅을 향에 앞으로 나간 것과 같습니다.

  또한 오늘 예루살렘으로 가시려는 예수님의 결심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드러냅니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좁은 문을 지나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통해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알기에 마음을 굳히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부름에 응답한 성소의 길입니다.

  오늘 사제 수품 25주년을 기념하는 남 신부님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여러분 각자의 성소를 위해서도 기도드립니다. 또한 김학범 알퐁소 신부님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떤 사람의 이 고백이 우리 가슴을 울리기를 바랍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9: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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