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웃

2020년 1월 26일

구약 시대에 북 이스라엘 왕국은 당시 가장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던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이 아시리아 제국이 북 이스라엘 왕국을 처음 침공해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점령된 지역은 오늘 제1독서인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즈불룬과 납탈리 지역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 가장 북쪽 지방으로, 이곳 사람들은 아시리아의 정책으로 인하여 모두 유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시리아는 결국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북이스라엘의 영토를 정복하고 주민들을 유배 보내게 되었는데, 제1독서의 말씀은 특별히 즈불룬과 납탈리를 언급하면서 그들이 천대받았으나, 빛을 볼 것이라는 희망을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지방에 대한 희망의 말씀은 바로 오늘 복음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처음 복음 활동을 펼치시던 지방을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애 동안 이 지방에 있는 갈릴레아 호수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카파르나움은 바로 그 갈릴레아 호수 근처의 마을로, 예수님의 마을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그분께서 기적을 비롯하여 하늘나라를 전하는 많은 활동을 하신 곳이었습니다. 비록 즈불룬과 납탈리가 과거에는 많은 핍박을 받던 곳이었지만, 이제 메시아께서 가장 많은 은총을 베푸시는 곳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사야서는 그 지방에 빛이 내릴 것이라고 전합니다.

오늘 복음은 즈불룬과 납탈리가 받게 된 은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바로 이곳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첫 번째 제자가 탄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레아 출신으로 베드로를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십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즈불룬과 납탈리는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그곳의 주민들이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시리아는 자기들이 침공한 지역의 민족들을 말살하기 위해서 다른 민족과 혼혈시키는 정책을 폈습니다. 그래서 갈릴레아와 사마리아 지방의 많은 사람들이 정통 유다인으로서의 혈통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보면 사마리아인들이 냉대를 받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같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도 순수한 혈통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그들을 차별하는 모습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여러 지방 중에서도 가장 멸시받는 지방의 사람들이 사는 곳, 온전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순수한 정통 유다인의 피가 흐르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당신의 제자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은 즈불룬과 납탈리가 지금까지는 다른 이스라엘의 지파들로부터 냉대를 받았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소외되지 않는 하느님의 손길이 가장 먼저 닿는 지파임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오늘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가장 소외된 이들을 먼저 기억하는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가장 먼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소외된 이들의 하느님이신 예수님께 찬미를 드리고, 그분의 손길이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에게도 미치시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소외된 이웃들을 향해 관심을 갖는 데에 뒤처지지 않도록 합시다. 소외된 이웃은 반드시 사회에서 격리당한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관심을 받지 못하여 마음 아파하는 모든 사람이 바로 소외된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자신이 소외된 사람이라면 하느님의 위로에 우리 자신을 맡기고, 다른 소외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위한 기도와 관심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다른 누군가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소외당한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꺾어버리는 악한 요소입니다. 복음 선포는 가장 소외된 이들 사이에서 시작되면서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는 점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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