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22년 9월 18일

이번 주에 우리는 본당의 주보성인인 성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축일을 기념하게 됩니다. 원래 9월 20일이 주보성인의 축일이지만, 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기념하기 위해서 주일로 옮겨서 주보성인 축일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알고 있듯이, 9월 20일은 성 정하상 바오로만이 아니라,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비롯한 103위 순교 성인들을 함께 기억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한국에서는 이날을 한국 순교자 축일이라고 불러왔습니다.

  한국 순교자 축일이 9월 20일로 정해진 것은, 기록에 이날 가장 많은 순교성인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태어난 날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표현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이 지상에서의 순례 여정을 마치고 원래 고향인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말하는 표현입니다. 특별히 순교성인들의 경우에 그들이 순교한 날을 하느님 나라에서의 생일이라고 부르며, 천상 탄일(Dies natalis)으로 기념하기도 합니다.

  9월 20일은 가장 많은 한국 순교성인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태어난 날로, 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하는 우리들이 도움을 청하고 기억하기에 가장 좋은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는 9월 20일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 동료 순교자 대축일』로 지내고, 9월 한 달을 『순교자 성월』로 지내며, 순교 성인들의 신앙을 본받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8월 15일에 성모승천 미사를 봉헌하면서 올해 한국 순교자 대축일에 본당 신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떠올랐습니다. 잘 알고 계신 것처럼 우리 민족에게 8월 15일은 특별한 날입니다. 1945년 8월 15일 한민족은 1910년부터 시작된 일본 제국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35년 만에 광복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8월 15일은 성모님께서 주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하느님 나라로 올림을 받은 성모승천대축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초기부터 성모신심이 강했던 우리 신앙 선조들이 성모신심을 더욱 강화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신자들은 성모님의 특별한 전구로 우리 민족이 해방되었다고 믿었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성모승천대축일에 우리 본당 공동체는 애국가를 함께 제창하면서 고향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함께 기억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그동안 미사 중에 성가를 크게 부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애국가만큼은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서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고국에 대한 애정이 코로나로 인한 위협보다 더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고국에 대한 애정으로 코로나의 위협을 이겨내고 애국가를 부르던 우리 공동체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박해의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 나라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고, 용감하게 순교의 길을 걸어갔던 신앙 선조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이 어렴풋하게 알게 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원래 있었던 곳,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가게 될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그리움을 키워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이 세상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모욕과 고통을 이겨내고 마침내는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주었을 것입니다.

  고향과 조국을 떠나 멀리서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고향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사는 우리 공동체이기에, 우리 신앙선조들이 천국본향을 그리워하며, 목숨까지 내어놓을 수 있었던 용기와 믿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앙 선조들이 천국본향을 속으로 그리워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함께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천국 본향을 그리워하며 하느님 나라의 법인 복음을 이 세상에서부터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시 사회와 갈등을 겪게 되었고, 끝내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느님 나라에서의 행복을 미리 체험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기꺼이 주님을 따라나설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의 위협을 겪으면서도 애국가를 목 놓아 부르고, 그리고 조금이라도 조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에서 살고 있듯이, 우리의 본향인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도 그렇게 살아가도록 합시다. 우리 신앙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복음을 믿고 따르면서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태어날 날을 기쁘게 준비하도록 합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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