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빵

2018년 8월 19일

휴가를 다녀오니 어느새 말복 삼계탕을 먹으며 여름의 끝자락에 왔다는 생각에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스치는 바람에서도 가을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여름 더위에 땀 흘리며 투덜대면서도 여름이 좋은 것은 학창시절부터 누리던 방학의 추억이 있고 또한 더위 핑계로 휴가를 떠날 수 있는 계절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몇 년이나 벼르던 아일랜드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동기 신부 본당에 여름 휴가 겸 본당을 도와주러 왔던 신부님을 통해 그 사제관에 머물기로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갔습니다.

가을 날씨에 넓은 초원과 돌담이 인상적인 나라였습니다. 인구가 사백칠십만 정도 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이지만 영국과 긴 항쟁 속에서 자존심이 아주 강한 나라이며, 우리나라에는 골롬반 수도회를 통해 많은 아이리쉬 신부님들이 아직도 선교 봉사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를 가든지 가장 인상적인 중의 하나는 역시나 음식입니다. 아침 일찍 도착해 배고픈 우리는 먼저 공항 근처의 식당으로 가서 아이리쉬 아침을 일부러 주문해서 먹으며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이제야 진짜 아일랜드에 온 것 같네!” 아이리쉬 전통 아침은 베이컨, 소시지, 순대(?), 구운 토마토, 계란 후라이, 그리고 부드러운 콩조림이 한 접시에 나옵니다. 보기만 해도 참 푸짐합니다. 옛날 농부가 이른 아침 밭일 나가기 전에 먹었던 고봉밥이 생각 날 정도로 양이 참 많았습니다.

세 신부가 똑같은 음식을 시키고 그 양에 놀랐지만 먹다 보니 서로 식성이 조금씩 다름에 서로 보며 빙그레 웃습니다. 소시지를 좋아하는 사람, 계란 후라이를 더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다른 신부들은 못 먹는 아이리시 순대(?)를 좋아하는 나 자신을 보며 웃습니다.

그리고 화재는 그 순대로 넘어갑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는 없는 음식으로 우리 순대처럼 돼지 창자에 피와 곡물 그리고 야채를 섞어넣어 쪄서 만든 음식으로 “블랙 푸딩 (Black Pudding)” 이라 부르는데,  순대를 먹으며 자란 나로서는 참 반가운 음식이 아닐 수 없지만 못 먹어본 미국 신부들은 돼지 피라는 말에 놀라며 손도 안 댑니다.

식사가 끝난 후 웨이터가 와서 내가 그 블랙 푸딩을 다 먹은 것을 보고 신기해하면서도 반가워합니다. 마치 외국 친구에게 김치를 대접했는데 김치를 잘 먹을 때의 그 반가움과 같은 것 같습니다.

사실 각 나라가 각자의 전통적 음식이 있고 그 특이함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주저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외국인이 그런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어떤 동질감과 친근감이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체가 이해가 되면서도 왠지 이질감이 느껴지는것도 사실입니다.

이번에 같이 간 동기 신부를 신학교 시절 ‘산수갑산’에 데려간 적이 있습니다. 불고기를 시켜서 둘이 먹는데 불고기는 참 좋아하는데 김치를 먹어보더니 도저히 냄새나고 시어서 못 먹겠다면서도 억지로 입에 넣을 것을 뱉지 못하고 삼킨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친구를 이해해 주었어야 했지만, 아직 어려서 내가 무척 서운해하니까 끝까지 열심히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에도 김치 먹는 것을 힘들어했지만 점점 나아지면서 요즘은 잘 먹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같은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어떤 동질감을 줍니다. 한국 사람이 외국에서 굳이 한국음식을 굳이 먹으며 하는 말은, “나는 어쩔 수 없는한국 사람이야!”입니다. 음식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습니다. 그러므로 그 고유의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그 사람들의 문화를 나누고 사상을 나누는 것이며 나아가 그들의 삶을 나누는 것이 됩니다.

실제로 중동의 풍습은 손님을 초대해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생명을 나눈 형제가 된다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 바로한 공동체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말도 가족은 음식을 같이 나누는 입, 즉 ‘식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연중 제20주일 복음의 말씀 (요한 6: 51-58)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우리는 연중 제17주일 ‘오병이어’ 기적을 필두로 다음 주일까지 요한복음 6장 “생명의 빵”에 관한 복음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생명의 빵”에 비유하십니다. 그리고 그 빵을 나누어 먹는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씀하며 나아가 그 빵은 당신의 살과 피임을 천명하십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이 말에 놀라고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에 굴하지 않고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머무른다.”(6:56)

생명의 빵 즉 성체를 통한 일치를 말씀하십니다. 성체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과 일치하며 나아가 삼위일체의 신비에 참여합니다. 바로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는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심이며, 성령은 바로 하느님의 지혜로 대변됩니다.

오늘 제1독서 잠언의 말씀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어리석은 이는 누구나 이리로 들어와라!” 지각없는 이에게 지혜가 말한다.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 예지의 길을 걸어라.” (9: 4-6)

성체를 모신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지혜를 먹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성령이시며 그 성령이 우리 안에 머문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영원한 삶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는 믿음의 공동체를 이릅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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