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

2023년 3월 19일

오늘 복음은 “보는 능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볼 수 없었던 태생 소경은 예수님의 도움으로 시력을 회복하여 보게 되었고, 바리사이들의 박해를 이겨낸 끝에 예수님을 믿고 경배할 수 있는 영적인 시력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세상의 것을 볼 수 있는 바리사이들은 끝내 영적인 시력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오늘 복음의 내용을 다시 한번 기억해보면서, 영적인 시력이 무엇인지와 어떻게 해야 영적인 시력을 회복하고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먼저 영적인 시력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를 보면 예수님께 치유를 받고 예수님을 증언하다가 유다인들 공동체에서 쫓겨난 태생 소경이었던 사람과 예수님이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태생 소경이었던 사람이 유다인들 공동체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하고 질문하셨습니다. 이에 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게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대답하였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주님, 저는 믿습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대화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인 시력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능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이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을 볼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영적인 시력이 상실된 채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이를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요한 1,9-10)하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을 볼 수 없었던 이유는 첫 번째 인간이 저지른 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창세 1,27)되어 하느님을 볼 수 있었던 인간이었지만,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창세 3,5)이라는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결과로 인간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숨게 되었습니다. (창세 3,8)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런 인간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돌을 들어 던지려고 하는 사람들을 피해서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시는 길에”(요한 8,59) 태생 소경을 보고 그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해 준 것처럼,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당신을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고 경배할 때, 우리는 다시 하느님을 마주 볼 수 있는 영적인 시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았고 모든 죄를 씻고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모든 죄를 씻고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다시 태어난 우리들이지만 죄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에 계속해서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생 소경을 치유해주시면서 당장 앞을 볼 수 없었던 소경에게 500미터가 넘는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 실로암 못에서 눈을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태생 소경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으로 옮겼습니다. 그 결과 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었다면 실천으로 옮기기 힘든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반면 처음부터 세상의 것을 볼 수 있었지만 끝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못한 바리사이들과 소경의 부모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신명 6장 참조; 요한 9,31)는 말씀과 달리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빠진 “안식일” 규정에 얽매여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치유해주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태생 소경의 부모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다인들이 합의하였다.”(요한 9,22)는 이야기를 듣고 두려워한 나머지 자식이 시력을 회복한 것을 보고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리를 두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영적인 시력도 회복하지 못한 채 어둠 속에 그대로 남겨져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세례성사를 통해서 영적인 시력을 회복하여 빛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빛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이제 더 이상 어둠 속에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서 스스로 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하느님의 모습을 회복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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