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일

2021년 2월 21일

  지난 2월 17일 재의 수요일로 은총의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시기는 고대 근동에서 완전함을 상징하는 4와 10을 곱한 숫자로, 노아 때 홍수가 내린 기간 40일(창세 7,12)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체험을 했던 40년,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 시나이산에서 단식했던 40일(탈출 24,18; 신명 9,18), 그리고 예수님께서 공생활 전에 광야에서 유혹받았던 40일을 상징적으로 나태내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재의 수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의 날들을 헤아려보면, 40일이 아니라, 46일이 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순시기의 40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는 사순시기 6번의 주일을 제외한 나머지 날 수를 헤아린 40일을 말합니다. 모든 주일이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는 작은 부활절이기 때문에 사순시기를 헤아리는 날수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사순시기에 우리는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면서 머리에 재를 뿌리고 회개와 참회의 시기를 보내면서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회개를 위한 시간을 지냅니다. 회개와 참회의 순간은 성경 안에서 “40”을 상징하는 순간들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의 배경이 되는 40일간 이어지는 노아 때의 홍수는, 모든 살덩어리가 세상에서 타락한 길을 걷고 죄로 가득 찬 것을 본 하느님께서, 홍수를 일으켜 하늘 아래 살아 숨 쉬는 모든 살덩어리들을 없애고 새롭게 계약을 맺은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보면서, 당신께서 세상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며 마음 아파하시면서, 세상을 다시 창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홍수를 그치시고 노아가 올린 번제물의 향내를 맡고는,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고 결심하시고는 노아와 계약을 맺습니다. (창세 6-9장 참조)

하느님과 노아가 맺은 계약의 장면이 바로 오늘 제1독서의 내용입니다. 하느님과 노아가 맺는 계약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홍수로 인해서 최초의 인간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와 계약을 맺어주셨습니다. 심지어, 첫 번째 인간에게 주셨던,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창세 1,28)는 복을 똑같이 노아의 후손에게도 내려주셨습니다.

원죄 이후 타락한 인간들을 보면서 창조를 후회하셨던 하느님께서 다시 똑같은 복을 주시면서 인간과 계약을 맺은 이 장면을 꼭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회개와 참회의 의미와 목적을 우리가 잊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참회하고 회개해야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해주고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받아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계속해서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 속에 있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회개와 참회를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는 사순시기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세례성사를 기억시켜주고 준비해왔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부터 세례성사는 파스카성야 미사 때에 있었고, 사순시기의 독서와 복음은 예비자들의 교육을 돕는 목적으로 배열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순 제1주일의 제1독서로 홍수 이후에 하느님과 노아가 맺은 계약을, 제2독서로 베드로 사도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홍수 이야기로 상징되는 세례성사의 관련성을 듣고, 복음으로 성령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낸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서 우리는 원죄와 본죄를 씻어버리고 하느님의 사랑스런 아들 딸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노아와 계약을 맺기 전에 하느님께서 생각하셨던 것처럼,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창세 8,20)입니다. 그래서 세례성사로 다시 태어난 이후에도 우리는 죄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이런 우리 인간의 약함을 성경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 말씀 이전에 이미 우리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죄의 유혹에 얼마나 쉽게 넘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령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신 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의 유혹에서 자유로워 질 수는 없지만,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다시 최초의 인간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으로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희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을 볼 수 없는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유혹에 넘어가 좌절하고 하느님과 멀어지기를 반복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약함을 알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유혹에 빠지지 않고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자녀로 삼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죄에 빠져사 당시께로부터 멀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죄에 빠져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회개와 참회의 시기인 사순시기가 은총의 시기인 이유는 하느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복을 내려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기이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은총의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부족하고 약한 나를 위해서 목숨까지 희생하신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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