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1년 5월 2일

  오늘은 부활 제5주일 5월 둘째 날입니다. 어제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시작한 오월은 성모 성월입니다. 부활의 후반부로 접어들며 성모 신심을 닮아 우리의 삶 안으로 부활의 신비를 녹여내는 시간입니다. 시인 이해인 수녀님은 오월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없는 축복을 쏟아내는 5월/ 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오/ 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빛을 향해 눈 뜨는 빛의 자녀 되게 하십시오.”

  부활 시기는 바로 우리가 ‘빛의 자녀’임을 자각하는 때입니다. 세상에서 지치고 바쁜 일상을 버텨내며 잊혀진 진실은 바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빛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세례 성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여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빛이고 세상의 소금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동토의 언 땅에 홀로 남겨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월의 따스한 햇볕에 포도나무에서 뻗어난 가지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 가지에 이파리가 돋고 꽃이 피어 열매가 맺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포도나무에 붙어 비바람을 함께 이겨내고 열매 맺는 가지입니다.

  오월의 햇빛에 건강하게 자라는 포도나무 가지라는 존재적 정체를 어머니의 도움으로 밝게 드러나길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은 “참포도나무요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 1)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15: 5) 하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복음은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 존재라는 사실과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하나의 공동 운명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하여 또 우리의 삶을 통하여 당신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전해지길 바라십니다. 가지에서 열리는 열매처럼 우리를 통하여 세상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포도나무인 예수님의 꿈입니다. 이를 위해 당신은 뿌리로부터 뽑아 올린 모든 양분을 가지로 보내십니다.

  오늘 복음을 들으면 어릴 적 한여름이면 식구들과 함께 포도원에 가던 생각이 새록새록 납니다. 흐드러지게 펼쳐진 포도 넝쿨 아래 놓인 평상에 앉아 갓 따온 포도를 송이 채 잡고 포도 육즙을 흘리며 입 볼이 불룩하도록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여름의 매미 소리와 천천히 먹으라는 누나들의 잔소리와 주변 평상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울창한 가지가 하늘을 가리고 땡볕을 가린 그늘의 시원함을 즐기며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맛있는 포도에 정신이 팔렸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참 행복했던 기억 중의 하나입니다. 음식을 통해 나는 기억이 가장 행복한 기억이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최후의 만찬에서 나눈 음식과 포도주를 생각하며 당신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빵과 포도주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오늘 당신이 포도나무라고 하신 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우리의 삶이 음식에 대한 기억이 깊게 남는 것은 음식이 우리 삶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소박한 음식도 함께 나누면 행복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삶은 같이 나누는 행복입니다. 삶의 독점은 남들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울 수도 있지만 결국 외로움에 지치고 행복한 기억이 별로 없게 되고 오히려 이웃을 미워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함께 한다는 것이고 삶을 나누는 것이며, 이는 우리 삶이 더욱 풍성하고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음식은 단순히 살기 위해 배고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빵과 포도주로 오시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일치의 비유이며 생명 나눔의 복음입니다. 이제 완연한 봄이 생명력은 이렇게 나누면서 하나가 되고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는 오월이 다가왔습니다. 오월의 장미를 꺾어 성모님께 드리고 그분의 굳은 믿음에 이 몸도 슬쩍 묻어가 주님의 은총을 듬뿍 받기를 바랍니다. 어머니의 기도 힘으로 우리가 이렇게 주님의 은총을 누리고 어머니의 사랑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이해합니다. 어머니의 음식에 사랑이 자라납니다. 그 음식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시인 TS 엘리옷의 말처럼 겨우내 할 일없어 평안했던 농한기가 지나고 나른한 농부의 손과 발을 삶의 현장으로 내모는 ‘잔인한 달’ 사월이 가고 오월이 오면 지난가을에 뿌린 씨가 자라 황금 물결로 변해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황금빛 보리밭에 바람이 스치며 이는 물결에 삶의 행복을 느끼고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듯이, 오늘 미사에 받아 모시는 성체에서 우리는 넉넉한 포만감과 따듯한 사랑과 가슴 뿌듯한 평화를 느낄 것입니다.

  잔인한 사월은 오월의 수확을 위한 아픔이었음을 알게 되고 사월의 노동이 오월의 풍요로움을 가져왔음에 감사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부활의 영광을 가져온 것과 같은 영광의 상처였음을 알게 됩니다.

  결국 우리 삶의 고통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고 행복을 위한 준비이며 우리 삶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됩니다. 이 고통은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 음식을 나누듯 고통도 나눔으로써 낙오되지 않고 더욱 건강하게 고통을 이겨내고 부활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드러나는 삶의 진실은 바로 우리가 함께 삶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무인도에 살지 않습니다. 곧은 대나무도 함께 자랄 때 곧게 하늘로 뻗어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하나가 될 때 생명을 얻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가 나무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월의 햇살을 받아 가지에 수줍은 연두색 이파리를 싹 틔우기를 바랍니다. 그 가지의 잎이 자라서 한여름 땡볕을 막아주고 포도가 영글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 것입니다.

  이 모든 꿈이 싹트고 자라나는 오월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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