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1년 4월 10일

오늘은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4월 10입니다. 어느새 사월도 중순으로 접어들고 성당 옆 기도 뜰 정문에 두 그루의 벗 꽃이 만개했습니다. 화사한 꽃 색이 우리의 마음을 화사하고 부드럽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봄 꽃이 겨울을 이기고 화려하게 세상을 장식하고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마음이 밝게 빛나고 기쁨의 희망으로 가득 찼는데, 오늘의 마르코 복음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말해 주듯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모든 이가 쉽게 믿을 수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어떤 이는 빈 무덤을 보고 믿고, 또 어떤 이는 예수님이 부르는 이름에 믿고, 또 어떤 이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빵 떼어 나누어 주실 때 알아봅니다. 이에 토마스는 예수님의 손의 못자국에 손을 넣어 보고야 믿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경험의 이야기를 듣고서 믿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간접 경험은 직접 경험과 달리 믿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직접 경험이 간접 경험보다 더 진실하고 정확하다고 하기도 그렇습니다. 직접 보고도 못 믿는 사람들이 있고, 믿기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치유 기적에 감동하고 믿기 보다는 잘못을 지적하고 판단하면 폄훼하다 결국은 예수님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보았다고 다 믿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보지 않았다고 못 믿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열린 마음입니다. 아니라고 부정하기 보다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마음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마음은 조상들의 전통인 율법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려했습니다. 그래서 좁은 근시안적 사고방식으로 판단의 기준은 세웠지만 자비와 회개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회개와 용서의 엄청난 기적을 그대로 받아드릴 수 없는 완고한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죽입니다.

제자들은 율법적 지식은 그리 없지만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갖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아무 편견이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 믿었으며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늘 복음인 마르코 복음의 부활을 더욱 참담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은 아무도 마리아 막달레나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날 때 까지는……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을 못 믿은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16: 15)

“우리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믿을까?” 하는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남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에 대해 혼란스러운 교육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어떤 이는 믿으라 하고 또 어떤 지혜는 끊임없이 의심하라고 합니다.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나 갈등을 합니다. 믿어서 손해를 보고 믿어서 이익을 보고, 또 의심해서 더 많이 알고, 의심해서 일을 그르칩니다.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 없거나 약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드러나듯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제자들을 꾸짖습니다.

결국 하느님을 믿고 사람을 믿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믿되 그 말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지혜는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이를 단죄하지 않습니다. 다만 안타까워합니다. 그들이 완고한 마음을 풀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열리길 바라십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이것은 믿고 저것은 못 믿고…하면서 자신이 편한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믿는 믿음이 필요하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과 이웃을 바라보면 사리사욕의 욕심이나 자신의 오만과 아집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기만하지 않고 화해하고 용서하려 노력할 것입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는 속담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면서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용서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저들을 용서해주시길 빕니다.” 하며 십자가 위에서 자신에게 욕하고 조롱하는 이들을 위해 아버지께 빕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의 믿음은 편협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믿음 깨지는 것이 아니라 믿지 못하여 언제나 의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강한 믿음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분별의 지혜입니다. 하느님의 지혜가 우리가 필요한 지혜입니다.

꽃이 화려합니다. 꽃샘추위를 이기고 비바람을 이기고 봄 꽃은 화려하게 피어납니다. 열매를 위하여…

시편 118(117),1과 14-15ㄱㄴ.16-18.19-21(◎ 21ㄱㄷ 참조)
◎ 주님, 제게 응답해 주셨으니 제가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알렐루야.
○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네. 의인들의 천막에서 울려 퍼지는 기쁨과 구원의 환호 소리. ◎
○ “주님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셨다!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 나는 죽지 않으리라, 살아남으리라. 주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주님은 나를 벌하고 벌하셨어도, 죽음에 넘기지는 않으셨네. ◎
○ 정의의 문을 열어라. 그리로 들어가 나는 주님을 찬송하리라. 이것은 주님의 문, 의인들이 들어가리라. 당신이 제게 응답하시고, 구원이 되어 주셨으니, 제가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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