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3년 2월 5일

오늘은 2월의 첫째 주일로 연중 제5주일을 맞이합니다. 지난 며칠 급작스러운 한파로 겨울의 무서운 추위를 제대로 느꼈습니다. 이번 한파로 고생하시지 않았나 걱정입니다. 무탈하게 이번 한파를 극복하시리라 믿습니다.

  성탄이 끝나고도 1월 내내 성당을 따듯하게 지키던 아기 예수님 구유와 성탄 트리를 치우고 나니 성당이 허전해졌습니다. 이제는 광야의 사순 시기를 기다립니다.

  성탄 시기가 어제 끝난 것 같은데 벌써 사순 시기를 준비하니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지난 금요일 저의 어머니 기일 100일 연도를 바치면서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는지 실감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을 멍하니 바라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 벌써 100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시간을 쫓아다닐 수도 없습니다. 다만 시간의 속도를 나의 속도로 조정하기 위해서는 계획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냥  되는대로 살아가면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기만 하고 삶의 가치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올 한해도 경제적으로 정치 외교적으로도 그리 녹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미리 걱정하며 두려워하거나 대충 되는대로 살아가기보다 좀 더 계획적인 삶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현명하게 대처하며 생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에서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역시 우리의 강한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잔뜩 움츠린 삶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오늘 희망을 만들어 나가는 삶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돌풍으로 배가 뒤집힐 것 같은 일촉즉발의 사태로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우왕좌왕하며 주무시는 예수님께 투덜대자, 예수님은 오히려 왜 두려워하냐고 나무라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 있으니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호수가 아주 고요해졌다.”고 마르코 복음은 전합니다. 또한 겁에 질려 있던 사람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참조 마르코 4: 35-41)

  우리의 적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자신감이 없고 불안할 때 나옵니다. 이는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문제를 없애지 않지만, 문제를 극복할 용기와 지혜를 줍니다. 희망의 이유가 됩니다. 특히 그 믿음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라면 당연히 희망의 이유입니다.

  우리는 희망이 이루어지길 기다리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희망은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며 희망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 힘이 믿음입니다. 희망이 없는 이는 미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늘도 없습니다. 희망이 없는 이는 오늘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희망의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더 이상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빛이며 세상의 소금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5: 13-16)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인 것처럼 우리도 물과 성령의 세례 성사로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이시고, 그 말씀이 우리 가슴에 살아 숨 쉬고 있는 한 우리가 세상에 울리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상의 소금인 것처럼 우리도 세상의 소금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빛이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의 빛입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가슴 벅찬 진복팔단, 즉 예수님의 행복 선언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행복한 이유를 들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풍요롭고 평안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받고 박해를 받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기 때문에 행복해진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말씀의 실천은 바로 자비와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것이 이웃을 위로하고, 이웃과 나누고, 이웃 사이에 평화를 이루고, 병든 이와 약한 이들이 억압받지 않고 오히려 자비를 입는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물질적 풍요나 세상적 권력과 세상적 명예를 좇으며 행복하길 바라는 사상누각의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함께 더불어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오늘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관은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소금으로서 그 가치를 다 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맛을 잃은 가치 없는 소금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으로서 가치를 다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금의 의미는 생명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금을 사용할 때는 음식의 맛을 내는 데 씁니다. 그리고 음식을 썩지 않고 저장할 때 방부제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소금이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우리의 생명과 같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은 어머니 배 속에서 자랄 때 바닷물과 같은 0.9%의 소금 농도를 가진 양수 속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태중의 양수가  우리 혈액의  소금 농도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금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다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좋아도 과한 것은 해가 된다는 맹점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상황에 알맞은 염분 농도를 가진 소금이어야 합니다.

  ‘싱겁다’ 또는 ‘짜다’ 하고 말할 때 그 기본은 소금입니다. 싱거워야 할 때가 있고, 짜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맞추지 못하면 맛을 잃은 소금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빛이 세상을 비추어 모든 사물을 드러내듯이 우리도 우리 주변 사람들을 드러내 주어야 합니다. 비방하고 비난하며,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장점을 드러내고, 칭찬해주며, 슬플 때 위로를, 힘들 때 도움을 주어 그들의 존재 가치를  잘 드러나게 해주는 존재로서 빛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밝게 빛나게 해주고, 더러운 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서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나아가 세상이 가야 할 길을 비추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세상의 미래를 열어가는 비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입니다. 소금이 제맛을 잃고, 빛이 함지 속에 가려져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세상의 소금으로서 또 세상의 빛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겸손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기도하며 말씀 안에서 불확실한 세상의 두려움을 떨치고 용기를 내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여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명하십니다. (5: 16)

  겨울이 겨울다워야 하듯이 우리는 그리스도다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매일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이 추운 겨울 가장 짧은 달인 2월에 봄을 기다리며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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