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2년 12월 25일

“기쁘다~구주 오셨네~만백성 맞으라~~” 성가 484번이 절로 입에 머물러 흥얼거리는 날입니다. 주님의 탄생 대축일, 크리스마스입니다. 지난 4주간 준비하며 기다려온 예수님의 탄생을 맞으며, 불확실한 새해에 대한 희망이 걱정과 우려를 뒤로하고 기쁨과 설렘이 앞서는 날입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당신이 오신 날 우리는”을 시작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이 어린이로 오신 날 우리는

아직 어린이가 되지 못한

복잡한 생각과 체면의 무게를 그대로 지닌 채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고백처럼 우리가 어린이가 되지 못하여 어른스럽게(?) 근심과 걱정이 기쁨을 눌러버립니다. 의심의 구름이 믿음을 가려버립니다. 어른은 대체로 불확실한 미래를 믿지 못합니다. 난관을 걱정하거나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그것이 어른의 운명이라고 자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시장에서 한 아이를 안으며 우리가 그 어린이와 같아지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이가 아버지를 믿듯이, 우리도 아버지 하느님을 믿어야 하고, 아이들이 현재를 즐기듯이 어른들도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면 내일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걱정과 두려움은 오늘 우리를 꼼짝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내일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처럼 복잡한 생각과 체면의 무게에 짓눌린 모습이 아니라 오늘은 아이처럼 단순하고 천진난만하게 주님 탄생을 기뻐하길 바랍니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성탄을 맞이하면 영하의 매서운 추위가 우리 몸을 움츠리게 해도 우리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지 못합니다. 임마뉴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탄생이 추운 겨울을 따듯하게 하고, 어두운 밤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에 희망을 갖게 합니다.

  비록 오늘 흰 눈으로 포근하게 덮인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는 아니어도 차가운 영하의 기온에도 밝은 햇살과 청명한 하늘이 주님과 함께 걱정과 두려움과 체면을 내려 놓고 밝게 밝아오는 새해를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게 합니다.

  성탄 대축일의 복음은 3개입니다. 성탄 전야 미사 복음, 새벽 미사 복음, 그리고 낮 미사 복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세 개인 이유는 전통적으로 주님 성탄 대축일은 세 미사 모두 참례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로마의 성탄 전례 전통에 의한 것인데 최초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탄 낮 미사만 있었지만,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짓고 그 성당에 베들레헴 구유 유물을 모시어 밤 미사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교황님은 그 밤 미사를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지내고 낮 미사는 성 베드로 성당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성탄 미사가 늘어나고 이 세 미사를 성 베드로 성당에서 지내게 되면서 세계 각국으로 그 전통이 퍼져나가 오늘날 밤, 새벽, 그리고 낮 미사로 정착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세 미사 모두 참례해도 됩니다.

  우리 교회의 전례 전통을 보면 원래 그랬던 것은 많지 않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전례의 이해도 바뀌고 문화도 바뀌고 상황이 바뀌면서 변화 발전되어왔습니다. 다만 초대 교회에서부터 똑같이 지켜지는 것은 최후 만찬의 성체 성사입니다.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을 통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미사는 오늘날까지 그 기본을 지키고 있습니다.

  미사의 중심인 성찬 전례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 시작되는 구원의 신비가 예수님의 치유의 기적과 수난과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부활의 신비까지 메시아 예수님의 삶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우리의 구원을 확인하는 전례 예식이기도 합니다.

  오늘 태어나신 예수님은 요한복음의 시작에서도 분명히 밝히듯이 태초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 즉 로고스입니다. 로고스가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 날이 바로 오늘 성탄절입니다.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요한 1: 1-3) 그리고 요한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 14)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이 세상에 하느님의 외아드님으로 오실 때, 그 모습은 늠름한 장군의 모습이나, 위대한 왕이나 귀족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나약한 모습을 가장 낮은 곳인 마구간 구유에 가장 평범한 부모의 첫아들로 세상에 왔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 구원의 신비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로써 성모님의 노래가 이해가 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루카 1: 51-52)

  성탄 밤 미사의 복음에서 알려주듯이 하느님의 천사들을 보내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릴 때 제일 먼저 들판의 양을 지키는 목자들에게 이를 알렸습니다.

10“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루카 2: 10-12)

  그렇게 하느님의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태어나신 것을 제일 먼저 안 사람이 헤로데 왕도 아니고 로마 총독도 아니고 유명한 예언자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들판에 양을 지키는 목동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운명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권력 이나 권세로 세도를 부리러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길 잃은 양 한 마리도 소중하게 여기고 찾아내는 착한 목자로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섬기러 오셨습니다. 아픈 이들을 고치러 오셨습니다. 아무도 배고프지 않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렇게 하시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세상에 이루려는 사명은 이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 2: 14)

  성탄 새벽 미사 복음은 그 목자들의 행적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천사의 말을 듣고 들판의 목자들은 아기 예수님을 찾아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거기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루카 2: 14)고 전합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천사에게 들은 말,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을 마리아에게 전해줍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고 합니다.

  오늘 성모님은 당신의 아드님이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주라는 증언을 또 들었습니다. 이에 놀라거나 기뻐하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습니다.’ 이제 성탄의 기쁨과 함께 우리가 새해 내내 해야 할 일도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어떤 말씀으로 우리를 이끄시는지 가슴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가장 힘들 때나 슬플 때, 그리고 절망스러운 순간에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존재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기면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는 기적을 경험할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임마뉴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오늘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울려 어른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처럼 어린이가 되어 마음껏 기뻐하고 즐기며 가슴 설레는 내일을 꿈꾸기를 기도드립니다.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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