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2년 11월 6일

오늘은 연중 제32주일 2022년 11월의 첫째 주일입니다. 만추의 11월은 언제나 모든 성인 대축일로 시작합니다. 모든 성인의 거룩함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그 거룩함을 본받고 거룩해져야 한다는 우리 신앙의 궁극적 목표를 깨닫게 됩니다. 이를 통하여 모든 죽은 이들을 위한 위령의 날이 단순히 죽은 이들을 그리워하는 날이 아니라 죽음이 우리 삶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부활의 은총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만추의 아름다움은 낙엽의 쓸쓸함이 아닙니다. 만추의 아름다움은 봄을 준비하는 확실한 희망입니다. 이는 봄이 오면 다시 새싹이 돋아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비롯됩니다. 그렇기에 낙엽을 사랑하듯 죽음마저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낙엽은 끝이 아니라 또 봄을 기다리는 다른 여정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죽음마저도 거룩한 우리 삶의 한 부분입니다. 부활을 준비하는 고귀한 삶의 순간입니다. 그래서 만추의 한가운데 지내는 위령성월은 슬픔이 아니라 희망의 기쁨입니다. 쓸쓸함이 아니라 뿌듯함입니다. 죽음의 잔치가 아니라 생명의 잔치입니다.

  이런 생명의 계절에 떠난 저희 어머니는 행복한 분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수확의 계절에 주님 곁으로 떠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위로해주시고 우리 가족을 격려해주신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 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물적 영적 도움은 우리 가족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 위로 속에서 우리 가족은 울면서도 웃을 수 있었고, 커다란 상심 속에서도 부활의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주님의 은혜를 여러분을 통해 받았습니다. 저의 미사 중에 여러분을 기억합니다.

  오늘의 복음은 루카 복음 20장의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사두가이 몇 사람과 부활에 관한 논쟁을 하는 내용입니다. 사실 사두가이들은 바리사이들과 달리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두가이들에게 구원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그들에게는 어이없는 괴변에 불과한 것입니다. 반면에 바리사이들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는 서로 반목하는 상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 대한 미움을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적과의 동침’을 하게 됩니다. 바리사와 사두가이는 사제들과 합심하여 예수님을 죽이려는 모함을 꾸미며 앞장섭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서로 합심하여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 전에 사두가이가 예수님을 미워하게 되는 신학적 배경을 설명합니다.

  부활은 우리 신앙의 가장 중심에 있습니다. 바오로 성인은 우리에게 부활이 없으면 우리 신앙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갇혀 지낸 3일의 암흑은 절망의 암흑이 아니었습니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나비로 변화하듯 3일간의 어두운 무덤은 예수님께는 절망과 끝의 의미가 부활의 변화 과정이었습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

  부활은 궁극적인 구원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가을이 겨울을 넘어 봄을 준비하는 지혜인 것처럼 죽음은 부활을 준비합니다. 그래서 죽음이 두려움의 이유가 아니라 고귀한 것이고 거룩한 삶으로 변화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의 삶은 사두가이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부활의 구원을 꿈꾸지 않고 현재의 성공을 꿈꾸는 불나방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일을 준비하기보다 오늘의 기쁨이 더 중요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은퇴를 위한 연금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때가 되어 최후의 심판 날 주님께 구원을 받고 영원한 삶을 영위하는 것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세 구복의 신앙이 아니라 부활을 통한 내세 구원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고통을 인내하고 이겨내며 내일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굳은 믿음으로 당당히 현재의 고통을 받아내고 이겨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시작이 바로 기도입니다. 혼자만의 기도를 넘어 함께 더불어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릴레아에서 병든 이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 희망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렇게 함께 더불어 기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힘든 이들의 짐을 같이 지어주고, 슬퍼하는 이를 웃게 해주고, 외로운 이의 친구가 되어주며,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나눠 줄 수 있는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사람들이며, 반대로 그 자비를 받아 힘을 얻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기도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기도하며 현재의 평안함과 세상적 성공을 기대하기보다. 좀 더 커다란 안목으로 부활의 희망으로 좀 더 자비로운 삶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자비가 넘치는 공동체가 되길 기도드립니다.

  만추의 아름다움이 우리 가슴에 스며드는 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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