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2년 10월 23일

오늘은 연중 제30주일입니다. 연중 기간은 총 34주간이므로 가을이 무르익어가면서 연중 시기도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가을이 우리에게 사색의 시간을 주는 것은 단순히 날씨 탓은 아닐 것입니다. 겨울을 이겨내고 봄의 생명과 여름의 왕성함을 보내고 수확을 하면서 겨울을 준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을은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며 사색의 계절이고 또 감사의 계절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우리 본당 연례 바자회로 가을의 풍성함을 즐겼습니다. 각 단체들의 열정과 땀이 모여 큰 잔치가 되어 본당 식구들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주중 내내 김치를 만들기 위해 고생하신 안나회, 로사리오회와 여러 봉사자분의 노고에 바자회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이것이 공동체의 힘입니다. 신앙의 힘입니다.

  사실 모든 행사는 행사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준비 과정이 더욱 중요합니다. 함께 목표를 정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어 지칠 때도 있지만 신앙의 힘으로 버티고 함께 목표를 향해 질주합니다. 그렇게 함께 더불어 일을 하다 보면 더욱 관계가 더욱 친밀해집니다. 마치 전우애 같은 끈끈한 정이 생깁니다. 이것들이 모여 더 튼튼한 공동체를 만듭니다.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힘들었지만 바지회가 즐겁고 내년이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오늘 복음도 지난 주일의 복음에 이어 기도에 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지난 주일의 복음에서 어느 과부가 불의한 판사에게 공정한 판결을 해달라고 끊임없이 애원하자 그 청을 들어주는 비유의 말씀에서 기도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기도의 자세에 관하여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기도의 기본자세는 겸손입니다. 하느님께 의로운 이와 죄의 차이는 우리 사회에서의 차이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의로운 이는 존경을 받지만 죄인은 멸시를 받습니다. 어쩌면 인과응보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의로운 기준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어기지 않는 삶을 사는 것만으로 의인이라 칭송받았습니다.

  그렇기에 바리사이들은 완고한 법률에 고집했고, 그렇게 완고한 법을 어기는 사람은 죄인이라 치부했습니다. 나아가 사회적 빈곤자나 불구자들도 또한 죄인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의 불치병이나 전염병의 원인이 하느님께 벌을 받은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엄격한 율법을 지키며 살면서 스스로를 의인이라 하여 더욱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소위 죄인들을 무시하고 핍박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부조리입니다. 하느님의 율법의 기본 정신을 망각하고 율법 안에 갇혀버린 삶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바리사이의 율법같이 사회적 지위를 주는 것은 부와 학벌과 같은 사회 배경 같습니다. 이들이 바리사이와 다른 점은 전자는 돈을 숭배하고, 후자는 하느님을 숭배합니다. 그럼에도 이 둘의 공통점은 자비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부자가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바리사이가 그렇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자비로운 부자도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는 이와 거리가 먼 자신의 의로움에 자아도취 된 완고하고 오만한 바리사이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리사이의 기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루카 18: 11-12)

  하느님은 이러한 기도를 받아주지 않으십니다. 이미 세상에서 그들이 받을 복을 다 받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느님 앞에서 낮아지게 될 것이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복음에서 죄인은 세리입니다. 세리가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사회적 상황은 과도한 세금 징수로 사회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며 자신의 부를 챙긴 사람들입니다.

  오늘 비유에서의 반전은 의인이라 불리는 독실한 바리사이는 오만의 죄를 짓고, 세상의 지탄을 받는 죄인 세리는 자신의 죄를 하느님 앞에서 뉘우칩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 중 겸손되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세리가 오히려 하느님의 복을 받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예수님을 따른 대표적인 세리는 마태오 복음을 지은 마태오 성인과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으로 가자는 말에 감동하여 회개한 자케오 세관장이 있습니다. 이 두 세리 모두 예수님의 초대를 받았고, 이를 받아들여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미워하여 종래 사두가이와 세제들과 짜고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입니다. 그들의 의로움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이었고, 자비가 아니라 오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겸손의 자비입니다. 자비는 회개를 낳고, 회개는 용서를 낳고, 용서는 치유를 통한 새로운 삶의 기회를 줍니다. 이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오늘 세리는 용서를 받았지만 바리사이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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