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2년 5월 15일

오늘 어느새 오월의 성모 성월의 셋째 주일로 부활 제5주일을 맞이합니다. 부활 시기가 무르익어가면서 부활의 의미가 우리 삶에 더욱 깊게 영향을 주기 바랍니다.

   부활 시기에 성모 성월의 맞아 성모님의 절대적인 신앙심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제자 요한에게 유언으로 어머니로 모실 것을 명한 것처럼 우리의 영적 어머니로서의 성모님을 공경하고 경배하며 닮으려 노력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에 지난 화요일 저녁 ‘성모님의 밤’ 행사를 성대하게 지냈습니다. 많은 분들이 늦은 저녁에 참석하여 더욱 따듯한 기도의 밤이 되었고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는 훈훈한 밤이었습니다.

   우리의 생명뿐만 아니라 신앙을 물려주신 우리 어머니들을 공경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기념하는 것은 당연한 우리의 의무입니다. 지난 주일 어머니의 날이 그렇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가슴에 붉은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시는 어머니들을 보면서 반성해봅니다. 작은 꽃 한 송이에 이렇게 기뻐하시는 어머니들을 기쁘게 하는데 우리 자녀들이 너무 게으른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우리는 진정한 하느님의 사랑을 어머니로부터 경험하며 배웁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며 우리는 성모님의 사랑을 기립니다. “엄마”라 부르는 그 한마디에 아픔과 슬픔이 사라지고 세상에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것 같은 외로움에 “내가 네 옆에 있다.”는 위로를 받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이 사랑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삶을 통하여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에게 곧잘 말씀하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당신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항상 제자들에게 주지시켜 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음에 직면했을 때 당신 곁에 있던 요한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당부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요한을 가리켜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두렵고 슬플 상황에서 새롭게 형성된 모자 관계에서 우리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함께 더불어 그 슬픔을 이기고 두려움을 극복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 마지막 당부는 단순히 홀로 남게 되는 어머니를 당부한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 공동체는 하느님의 사랑과 가장 닮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뭉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제자들과 세상적으로 잠시 떠나더라도 함께 더불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을 교회의 상징이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어머니의 사랑이 녹아 있는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 그 강한 믿음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가족 공동체의 중심인 것처럼 우리 성모님의 사랑이 우리 신앙 공동체의 중심인 이유입니다. 부활 시기에 묵상하게 되는 부활의 신비는 또한 세례와 견진 그리고 성체 성사로 드러나는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세례와 견진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파스카 신비를 경험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영적 양식인 성체 성사로 우리의 믿음은 더욱 강해지고 깊어집니다.

   따라서 부활 시기의 의미는 우리가 받은 세례와 견진에 대한 의미를 묵상하고 다음 세대 아이들이 받게 될 세례 성사의 의미를 묵상하는 때입니다.

   세례의 의미가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났다는 사실로 하느님의 나라의 상속자라는 사실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이신 것처럼 우리도 아버지의 말씀을 세상에 전해야 하는 의무를 갖게 되며, 우리 삶을 통해 하느님을 찬미 찬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영원한 삶을 얻게 됩니다.

   성체 성사는 역시 우리의 영적 양식입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유지 성장하기 위해서 일용할 양식이 있어야 하듯이 영적 삶과 성장을 위한 일용할 양식 또한 중요합니다. 성체(그리스도의 몸)가 바로 우리의 영적 일용할 양식입니다. 따라서 매 주일 미사 참례는 참 중요한 신앙의 의미입니다.

   매주 주일 미사에 참례하여 말씀을 듣고 성체를 통해 영적 양식을 먹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영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성장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표징은 하나로 귀결됩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바로 섬기는 겸손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 서술에서 다른 공관복음과 달리 빵 나눔보다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모습을 더욱 강조하며 그를 통해 서로 섬기는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오늘 주일 복음은 요한복음의 13장의 내용으로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위해 모인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당신의 다가오는 죽음을 알려주시고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전해주시는 장면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당신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그 의미로 설명하십니다. 즉 공관복음에서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실 때,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박해를 받고 죽으신 후 사흗 날에 부활하실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여러 번 말씀하셨다면, 요한 복음에서는 오늘 복음처럼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13: 31-33)

   영광에 관한 말씀을 하실 때는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하지만 33절의 “너희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하는 부분에서 이별이 임박했음을 알 뿐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님의 다가오는 수난과 죽음을 직감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여러번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셨어도, 그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죽음의 예고와 함께 남긴 당신의 유언은 이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서로 사랑하여라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34)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3: 35)

   예수님을 믿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의미는 겸손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또 죄를 미워하지만 회개하는 죄인을 품어주려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일곱 번의 이른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려는 죄인을 용서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우리의 어머니는 자녀의 잘못을 언제나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 하십니다. 당신이 섭섭해도 참고 이해하려 하고 용서하려 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사랑이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하는 사랑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 오월에 성모님을 기억하고 어머니를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오늘 예수님께서 주신 새계명을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 서로의 인사는 “안녕하세요?” 가 아니라 ‘사랑합니다.”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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