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1년 9월 11일

오늘은 연중 23주간 토요일 9월11일로 9.11사태 2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20년전 그 날도 오늘처럼 아름다운 아침이었습니다.

일부의 증오와 분노가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이들을 희생시킬 수 있는지…얼마나 악한 감정인지 너무나도 잘 드러난 사건입니다. 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이런 악마적인 만행을 저지른 자들은 그들의 스스로가 “정의가 승리했다.” 하고 떠듭니다. 그들의 정의는 자신의 분노를 터트리는 것인 것을 마치 하느님의 뜻 인양 말합니다. 마치 자신들이 성인이라도 된 듯이 웃습니다.

우리 곁에서 일어난 비극이 20년이 지났어도, 그 상흔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두렵게 하고 분노와 화해 사이에서 갈등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갈등은 아직도 살아있고 우리를 위협합니다.

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루카 6: 43) 이 말씀에 이어서 이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6: 45)

사람은 원래 악하게 태어났다는 순자의 성악설이 있고 원래 선하게 태어났다는 맹자의 성선설에 대해 배우며 자랐습니다.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를 성찰하며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참 많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과 형상으로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느님께서 직접 당신의 입김을 불어넣어 생명을 주신 존재.”입니다. (참조 창세기 1-2장) 선과 악의 이전의 존재입니다. 온전히 하느님의 거룩함을 받고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아담과 이브에게 내린 단 하나의 금지는 선악과를 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선과 악을 구별할 능력을 주는 그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지만 유혹에 빠져 먹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선과 악을 구별하고 심판합니다. 단 하느님의 진리의 객관적 판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오만과 편견으로 상대적 판단으로 심판하려 합니다. 그래서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는 식의 오류를 범합니다.

오늘 복음을 들으며 묵상해 봅니다. 나는 좋은 나무인가? 아니면 나쁜 나무인가?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 하는 것은 우리가 나쁜 나무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무화과와 포두나무처럼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나무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아무리 좋은 나무라 하더라도 가시덤불에 가려져 있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선한 것을 담으면 선한 사람이 되고, 악한 것을 담으면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포도 나무를 덮고 있는 덤불을 거두어 내고 가지치기를 하면 바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는 숲 속에 방치된 나무가 아니고, 잘 가꾸어진 나무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빠진 유혹은 자신들이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유혹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마치 하느님이라도 된 듯이 작은 힘이라도 있으면 이를 더 약한 이들에게 휘두르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얄팍한 지식으로 하느님처럼 심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히 이러한 오만과 위선을 단죄하십니다.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심판은 하느님의 영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 조차도 당신의 힘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거나 세도를 부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당신의 아드님의 수난과 죽음을 불사하고 사람들을 구하려 하십니다. 이는 바로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며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고 이를 이웃에게 실천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시작이면 끝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유혹에 빠집니다. 이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6: 47)

이 말씀이 오늘 무겁게 우리의 마음을 누릅니다. 그리고 반성합니다. 미움과 분노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파괴를 부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그리고 나의 지식과 지혜가 하느님의 것이 아니면 악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도…하느님께 나온 모든 것은 사랑입니다.

오늘 주님을 부르며 고백합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미움과 분노가 아니고 당신의 사랑으로 악의 유혹을 이기게 하소서.”

시편 113(112),1ㄴㄷ-2.3-4.5ㄱ과 6-7(◎ 2 참조)
◎ 주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양하여라, 주님의 이름을.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
○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은 찬양받으소서. 주님은 모든 민족들 위에 높으시고, 그분의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네. ◎
○ 누가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 같으랴? 하늘과 땅을 굽어보시는 분, 억눌린 이를 흙먼지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불쌍한 이를 잿더미에서 들어 올리시는 분. ◎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