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1년 9월 9일

오늘은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9월9일,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서늘함과 함께 내리는 비가 천상 가을비입니다. 대책없이 비를 맞으면 처량맞고, 우산을 타고 떨어지는 비는 불편하지만, 창 밖으로 보는 비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줍니다.

지난 주 수요일 밤 내린 폭우의 두려움과 피해를 잊기도 전에 내리는 비가 그리 썩 반갑지만은 않지만 오늘의 가랑비가 지난 폭우의 찌꺼기와 우리의 두려움을 씻어버리기를 바랍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첫 가을비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가을비에게

여름을 다 보내고
차갑게
천천히
오시는군요
사람과 삶에 대해
대책 없이 뜨거운 마음
조금씩 식히라고 하셨지요?
이지는
눈을 맑게 뜨고
서늘해질 준비를 하라고
재촉하시는군요
당신의 오늘은
저의 반가운
첫 손님이시군요.

오늘 우리 본당 식구들에게도 이 비로 뜨거운 마음 식히고 맑은 눈으로 반갑게 이 아침 비를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천상병 시인은 그의 “비오는 날”에서 “비 오느 아침의 이 신선감을 / 나는 어이 표현하리오?” 하고 읊습니다. 이 느낌이 여러분의 가슴에도 가득하길 기도드립니다.

오늘의 복음은 역시 계속해서 루카 복음 6장의 말씀입니다. 다만 어제 “성모님 탄생 축일’을 지내며 마태오 복음을 대체되어, 루카 복음 6장 20-26절의 말씀을 못 들었습니다.

우리가 듣지 못한 복음은 “참 행복과 참 불행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의 행복을 선언하시고 나누지 않는 부자들은 불행하다고 선언하십니다.

지금 배고프고 슬프고 미움 받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자들이 불행한 것은 나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갖기 위해 욕심을 불태우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하며 부를 축적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변을 살피지 못하면 스스로 불행해집니다. 자신의 욕심에 갇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 하는 것은 단지 일주일에 하루를 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주변 이웃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를 위해 남의 것을 착취하면 이는 불행의 시작입니다. 내가 웃으려면 남이 우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그는 불 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같이 불행으로 날아드는 것입니다.

재물을 가진 만큼 마음도 넉넉해져야 합니다. 그 넉넉함이 자비와 배려로 드러나면 주변의 배고픈 이들이 행복해지고 슬픈 이들이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고 덩달아 그 부자도 행복해 집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바라는 행복한 세상입니다.

오늘 복음은 행복과 불행 선언 다음의 말씀 (6: 27-38)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잘 말씀해 주십니다. 이는 참 행복 선언과 함께 “평지 설교”라고도 부릅니다.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서시니, 그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니…”(6: 17) 하고 이들에게 설교를 시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사실 듣기가 어렵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며 시작하는 말씀은 참 아름답지만 현실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게 합니다.
“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6: 27-28)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주 높은 도덕률을 요구하십니다. 인간적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하느님의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오늘의 말씀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 아름다운 말씀이구나 하고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감상하듯 감탄하지만 나와는 동떨어진 세상의 모습으로 상상의 세상으로 취급하며 뒤 돌아설 것인가?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우리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과 함께라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목표이고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서로 힘을 합쳐 걷다 보면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여정의 중간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불가능하다고 포기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희망으로 무장하여 사랑으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함께 더불어 가는 우리 여정의 끝에 오늘 복음이 완성되는 ‘하느님 나라’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그 나라를 조금씩 경험합니다. 지금 당장 원수를 사랑할 수 없다고, 나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가 포기 하지 않고 고민하고 기도하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 전에 가능성을 먼저 찾는 신앙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적어도 우리가 일상에서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6: 31) 이것이 바로 잊지 말아야 할 예수님의 황금률의 기본입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가을이 왔음을 알리듯이, 오늘 복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음을 깨닫기를 기도드립니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닫힌 우리의 마음을 열어줍니다.

시편 150,1ㄴㄷ-2.3-4.5-6ㄱ(◎ 6ㄱ)
◎ 숨 쉬는 것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 거룩한 성소에서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웅대한 창공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위대한 일 이루시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지없이 크시오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
○ 뿔 나팔 불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수금과 비파 타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손북 치고 춤추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거문고 뜯고 피리 불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
○ 바라 소리 낭랑하게 주님을 찬양하여라. 바라 소리 우렁차게 주님을 찬양하여라. 숨 쉬는 것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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