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일

2023년 4월 16일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며,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비”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 “자비”의 종교로 알려져 있는,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개념과 “하느님의 자비”를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불교에서도 사랑과 연민의 뜻으로 “자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세상에서의 근심과 슬픔의 뿌리인 이기적인 탐욕에서 벗어나서, 넓은 마음으로 질투심과 분노의 마음을 극복할 때에 발휘되는 것으로, 중생의 고통을 극복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반면 “하느님의 자비”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보고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저 아파하고 슬퍼하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보고 나의 오장육부가 끓어질 정도로 함께 고통을 느끼는 것을 “자비”라고 설명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지내는 것은 먼저 하느님 아버지께서 죄의 종살이에 억눌려서 고통 받고 있는 우리를 위해서 함께 아파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를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우리도 세상의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은 2000년 대희년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지정하셨지만, 교회는 훨씬 이전부터, 부활 시기를 “신비 교육”기간으로 지정하여 신자들이 성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왔습니다. 이는 주님의 수난과 고통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시기에 예비신자들을 준비시키고, 이미 세례받은 신자들에게는 세례성사의 의미를 기억시켜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신자들이 성사 안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깨닫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오늘 본기도에서는 “물로 깨끗해지고 성령으로 새로 난 이들이 성자의 피로 얻은 구원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닫도록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주님께서 교회에 남겨주신 성사의 은총을 깨닫고 사는 사람들의 이상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신자들의 공동체가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는 말씀은,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한 사람들이 이웃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가진 것을 나누고 공동으로 소유하는 가운데서, 공동체 안에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스스로 가난해지고 낮아지신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이러한 초대교회 공동체가 모이기 시작한 시점을 전해주는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던, 주간 첫날마다 함께 모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모였던 이날은 지금 우리가 함께 모여서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기억하며, 전례를 거행하는 “주일”을 이야기합니다. 이 신자들의 모임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평화를 빌어주시겠다”고 오늘 복음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에 함께 모여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셨는지에 대한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볼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처럼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기도 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 안에서 사는 것을 거부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셨고,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한 이유를,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록을 읽고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이 담긴 복음을 읽고 믿는다는 것은,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유일한 말씀인,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남아 있을 것이다.”는 말씀을 주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죄의 결과로 고통에 시달리는 우리의 고통을 대신 겪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직접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말씀과 성사 안에서 기억합니다. 여기서 기억은 우리 머릿속에 저장해 두는 것을 넘어서,  주님께서 하셨던 것을 우리도 따라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서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이고, 물로 깨끗해지고 성령으로 새로 난 이들이, 성자의 피로 얻은 구원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고 고통스러워하신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기억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처럼 나와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공감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도록 합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게 되어, 사람들이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눈으로 보지 않고도 주님의 부활을 믿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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