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사랑

2018년 10월 7일

지난주 문학 잡지 출판 기념회 참석했는데 그 순서의 하나로 어느 부부가 축가를 불렀는데 그 노래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였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노래로 만추의 아름다움에 사랑의 아름다움을 더해 포근한 밤이었습니다.

이 노래의 노랫말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와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들으면 마치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의 퉁탕거리는 가슴의 소리 같아 낯뜨거워지기도 하면서 또한 “사랑”이란 정말 이렇게 뜨거워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시월의 첫째 주일 복음은 예수님의 부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안타깝게도 바리사이들의 질문은 사랑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라는 이혼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사정에서인지 남편이 이혼을 정당화 하려 합니다.

부부의 사랑은 가장 예수님의 세상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친밀하고 희생적인 사랑이라고 교회는 말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창세기를 예를 들며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코10: 8,9)라고 말씀하십니다.

현재 미국 사회에서 약 90%의 사람들이 50 이전에 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중에 40-50% 의 부부가 이혼을 합니다. 아직 대부분이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지만 반 정도는 성경 말씀대로 백년해로하지는 못합니다.

결혼을 위한 만남이 소위 말하는 양가가 “중매”를 통한 만남이 주를 이루었지만 요즘은 대부분 연애결혼을 합니다. 혼인 면담을 해보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의 가사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커플이 참 많습니다. 그러한 커플과 면담을 하다 보면 괜히 저도 뿌듯해집니다. 그리고 기도드립니다. “이 커플은 제발 이 사랑으로 백년해로할 수 있도록 당신의 성령으로 도와주소서!”

그런데 결혼 후 세월이 지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면 “살아가는 이유와 꿈을 꾸는 이유”는 남편이나 아내가 아니라 아이들로 바뀌어 버린 현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한숨 쉬면 내뱉는 말 “아이들 때문에 살지요…….”

생물 시간에 배우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단순히 우리 몸에서 분비하는 “호르몬”의 작용이라면 아니면 사랑이 사춘기 시절 한때의 열정이라면 그 사랑은 곧 식어버리고 인간 조건에 의해 만나는 동물적인 결합이거나 경제적 결합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정원을 가꾸듯이 가꾸어야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진정한 사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이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 그래서 더 이상 바람이 없고, 지금 살아가는 이유라 할지라도 그래서 다이아몬드처럼 변치 않을 것 같아도 그 사랑을 가꾸지 않으면 시들어 버리는 꽃과 같습니다.

정원을 가꾸는 것은 죽은 가지를 쳐주고 거름을 주고 풀을 뽑아주고 물을 주면서 관심을 가져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입니다. 비판이나 경멸은 정원에 자라나는 덩굴과 같습니다. 덩굴을 잘라주지 않으면 주변의 모든 식물을 감싸 죽여버리는 것과 같이 사랑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또 사랑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이기적이지 않은 이타적인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나의 이익을 위하여 상대를 이용하거나, 나의 소유욕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참 위험한 관계입니다.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고 이타적입니다.

나아가 오늘 복음도 간음을 경계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이혼하는 제일 큰 이유는 간음입니다. 약 27%의 이혼하는 부부가 상대의 간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70% 이상의 이혼 이유가 간음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경멸하고 비판할 때, 상대방을 언제나 비판하거나 말로 또는 육체적으로 폭행을 할 때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결국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시작합니다. 이 배려는 일방적인 배려가 아닙니다. “네가 먼저 배려를 안 하는 데 내가 왜?” 또는 “왜 나만 배려해야 하는데?”라는 식의 배려가 아니라 서로 함께 배려할 때 진정한 사랑입니다.

언제가 함께 불렀을지도 모르는 사랑의 노래를 이 아름다운 시월에 함께 부르며 “아이들을 위한 부부”가 아니라 “진정 서로를 위한 부부”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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