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일

2020년 12월 13일

  오늘 대림 제3주는 “기쁨.”의 주일입니다.  예수님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곧 주님의 탄생 기쁨을 맞이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 “엠마뉴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의 정성을 다해 마지막 준비를 하는 대림 3주가 되게 오늘 복음을 같이 묵상하시겠습니다.

  오늘 대림 제3주 복음인 요한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정체에 대해 유다인들은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정체에 대해 묻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대답하기보다는 누가 아닌지를 선포합니다.

  요한은 유다인들의 “당신은 누구요?”라는 질문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라고 선포합니다.  요한은 엘리자벳 이 그를 잉태 하면서 그는 성령 하느님의 선택을 받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늘에서 돌아온 엘리야도 아니라고 합니다.  요한은 예언자의 차림을 하고, 죄의 회개와 하느님의 심판을 성령의 이끄심으로 선포하며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엘리야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대답에 답답해진 유다인들은 “그러면 그 예언자에?”라고 묻습니다.  모세가 예언한 바로 그 예언자 인지 유다인들은 궁금해합니다.  요한은 이스라엘의 후예로서 모세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지만 그는 유다인들에게 “아니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광야에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며 죄의 용서를 상징하는 물의 세례를 주는 자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요한은 요르단에서 성령의 안수를 받고 세상에 나타나실 그리스도를 향해 가리키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요한에게 누구인지 물어보면서도 요한의 대답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구세주가 아니라는 요한의 대답에 그들은 계속 요한을 재촉하지만 요한은 굳어진 그들의 마음과 생각이 원하는 대답은 하지 않고 곧 세상의 잘못을 비춰 주시려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한 길을 준비하도록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요한의 외침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코앞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현재 우리의 최고의 관심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우리 모두의 관심사는 코로나입니다.  코로나에 감염 되지나 않을지, 부모님, 형제, 자녀들 그리고 지인들이 감염되어 병원에 입원이나 하지 않을지 걱정을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관심사는 코로나 때문에 생긴 일들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녀들이 학교와 외부 활동을 전혀 못 하게 되어서 생긴 자녀들의 정신건강, 사회 격리가 길어 지면서 가정의 수입이 많이 줄어 들어 앞으로 생활할 걱정, 그리고 사업을 할 수 없어서 앞날의 대한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20년 거의 코로나가 세계의 관심사가 되다 보니, 이제는 모든 것들이 코로나와 연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개인 생활, 가정생활, 사람들과의 관계, 직장, 사업, 공동체, 사회, 정치, 나라 그리고 전 세계의 모든 일들이 코로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코로나라는 “병”이 뉴스에서 대화의 주제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모든 관심은 “코로나”라는 것에 집중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의 생각, 말, 행동, 인간관계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이 “코로나”는 이제 우리에게 장해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없다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이 중심이 되어 우리 인간들이 서로를 위해서 전파할 복음이 우리 삶의 중심이 아니라 코로나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 우리의 삶의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유다인들도 당시의 문제들에 대한 자신들의 관심 만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단지 참 평범한 밤 근무를 하는 목동들과 저 멀리서 별 하나를 보고 찾아온 이방인 박사 세 명 외에는 어지러운 세상을 밝혀 주실 구세주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목동들 그리고 삼 왕은 유다인들이 알아보지 못했던 구세주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목동들과 삼 왕은 유다인들과는 달리 이웃에게 관심에 귀를 기울이며 이웃들이 필요 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주님 오심을 천사들이 선포 할 때 귀 기울이며 들었을 것입니다.

  모든 관심이 코로나에 쏟아져 있는 지금, 이 어지러운 세상에 사는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시려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맞이했던 목동들과 같이 삼 왕과 같이 맞이하려는 노력이 더 절실히 필요한 대림이 아닌가 묵상합니다.

  내 마음도 어둡고 힘들지만, 부모, 형제, 친구, 이웃 그리고 거리에서 지나치는 사람들,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 주일에 만나는 형제자매들, 그리고 미사 때 뵙는 예수님께 진정한 미소를 짓는 대림이 된다면 어떨까요?

  나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앞날이 어둡지만은 코로나 때문에 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이웃들을 위해서 나의 작은 정성을 나누는 대림이 된다면?

  이 어지러운 시기에 “코로나” 또는 “내가” 관심의 중심이 아닌 아기 예수님과 이웃이 우리의 관심의 중심이 된다면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