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2018년 11월 25일한국의 본당에서 사목을 하던 중에, 한 여자 청년에게 혹시 수녀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이 하는 말이, 자기가 남자였으면 신부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텐데, 수녀님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그 이유를 두고 본당에서는 신부님이 왕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당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사제이기는 하지만, 지금 시대에 사제들에게서 얼마나 권위적인 모습이 많이 비춰졌기에, 한 젊은 청년의 눈에 사제가 왕으로 보였는지 반성해 보게 되었습니다.
2014년 한국천주교회에서 약 700명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톨릭 교회의 쇄신이 가장 필요한 영역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약 44%가 성직자들의 권위주의와 성직중심주의로 응답했습니다. 사제로서 씁쓸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고작 700여 명이 응답한 결과에 불과하다고 해도, 성직자들의 쇄신이 현대 교회 안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시작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는, 저를 포함해서, 사제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일컬어지기에, 예수님의 역할을 대신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신자들이 사제들을 존경하는 것인데, 사제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유혹이 생겨납니다.
실제로 복음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극진히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소중히 여겨, 그분 주위로 모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또 그런 일들을 즐기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 세상에 오신 모습 그대로,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비천한 곳에 오신 모습 그대로, 늘 겸손하셨고, 결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사제들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보고 배워야 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냅니다.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유일한 왕이신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또한 왕이시지만 겸손함을 지니신 예수님의 겸덕을 새기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빌라도에게 신문을 받는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듣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자 당신께서 유다인들의 왕인지 재차 묻는 빌라도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하십니다. 이는 당신께서 왕이시라는 완전한 긍정의 의미를 담은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당신께서 왕이시지만, 왕으로서 당신의 신분을 완전히 드러내시는 것을 유보하시는 말씀입니다.하느님께서는 이미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세우셨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재림하시는 때에, 왕으로써 다시 이 세상에 오실 분이시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때가 이르지 전까지는 당신 스스로 왕이심을 드러내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겸덕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지도자들이 자기의 권위를 내세우고,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봅니다. 비단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도 다른 이들보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있음을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고, 복음의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하셨는지 바라보고, 그분께로부터 올바른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이 세상의 유일한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을 다 내려놓으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처럼, 당신 스스로 왕이심을 드러내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보고, 배우고, 가야할 길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 안에 있습니다. 오늘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면서, 예수님의 겸손의 덕을 배우고, 세상의 모든 지도자들이 예수님과 같은 모습을 지닐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