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2018년 9월 16일

허리케인 시즌이 9월의 중순 올해도 예외 없이 남쪽에서는 거센 태풍인 플로렌스가 몰려오고 캐롤라이나주에서는 백만이 넘는 주민이대피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거친 폭풍이라도 잘 대비하면 무사히 넘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주 사소한 것도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번 태풍으로 수많은 재산 피해가 예상되나 인명피해가 없기를 기도드립시다.

또한 9월은 한국 교회의 순교 성월입니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순교로 신앙을 지키고 신앙의 뿌리가 되어 우리의 신앙의 근간을 이룹니다. 그 신앙의 근간은 바로 오늘 연중 24주일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마르코 8: 34-3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바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임을 오늘도 예수님은 강조하십니다. 단순히 세파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듯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적당히 타협하며 그렇게 안일하게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에 동참하여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은 수없이 강조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구원의 여정의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의 예수님은 이제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여정을시작하려 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8장은 지난 주일 말 못 하는 귀머거리를 치유하신 후 갈릴레아에서 군중 사천명 가량을 일곱 개의 빵과 작은 물고기 몇 마리로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음식이 일곱 바구니나 된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이는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의 군중을배불리 먹이신 후 두 번째의 기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이에 예수님은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카이사리아 필리피로 가십니다.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당시 신도읍지로 헤르만 산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이 나는 곳으로 요르단강의 원천이기도 하며, 많은 신전이위치하여 많은 이들이 샤머니즘적 신앙의 중심지이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수많은 이방인이 모여드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가신 것입니다. 유대인인 예수님 일행의 행색은 남들과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이렇게 이방인들 사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정체에 대해 물어봅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는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합니다.이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중요한 것에 대해 비밀을 지킬 것을 요구하십니다. 병자를 치유해주시고 이를 비밀에 부칠 것을 명하시고, 이렇게 중요한 당신의 정체에 대해서도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이를 “메시아의 비밀”이라고도 하고 Devine Secret”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마르코복음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런 비밀의 함구령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의 성숙도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기적 목적은 당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개인적인 기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이 믿게 하려는 한 수단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기적은 개인적 구원을넘어서 세상 구원이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보여주시고 증거하시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서 세상이 믿고 변할 때 가능함을 알려주시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적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따라서 섣부르게 그 기적을 소문내어 그 본질을 오도하는 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것처럼 당신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 함구령을 내리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구원의 목적과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함부로 그 정체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예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정체를 정확히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십니다. (참조 마르코 8: 27-33)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이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이 현세구복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내세구복입니다. 즉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현세구복은 바로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개인의 공명과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의 나라가 아니며 몇몇의 권력자의 나라가 아니며 군림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느님의 일은 세상적 지혜로는 바보 같은 일입니다.

그 바보 같은 일, 즉 수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은 세상적으로 보면 참 어처구니 없고 바보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안된다고 반박하고 이를 예수님이 꾸짖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의 신비는 오늘 처음 말씀하시고 9장과 10장에 걸쳐 총 세 번 말씀하십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께서 예고하시고 구원을 위한 길임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이 예고는 이제 갈릴레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여정의 시작을 알립니다. 세상적으로는 죽음을 향한 여정이지만, 하느님의 일로는 부활을 통한 구원의 여정입니다. 세상은 수난과 죽음의 삶의 끝과 저주를 말하지만 하느님은 궁국의 축복인 부활의 시작임을 알려주십니다. 하느님께 고난은 오히려 축복의 준비일 수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은 신앙의 중심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시간이 흘러 16세기 대륙의 동쪽 끝 조선에 닿았고 그 말씀은 많은 사화와 박해를 발판으로 싹을 틔워 자라고 19세기에 드디어 방인 사제를 배출하고 그 첫 번째 사제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 또한 피를 흘리며 더 굳은 신앙의 기초를 세우십니다. 성인은 당신이 옥중에서 고통을 받으면서도 세상의 신자들에게 편지로서 신앙을 돈독하게 하십니다.

“이런 군란 때는 주님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덕공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영혼을 구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 성녀의 자취를 만만 수치하여, 성교회에 영광을 더하고 하느님의 착실한 군사와 의로운 자녀 됨을 증거하고 비록 여러분의 몸은 여럿이지만 마음으로는 하나가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실 때를 기다리십시오.” (성 김 대건 안드레아 옥중 서한 중)

오늘도 그 신앙은 우리의 가슴에서 자라납니다. 세상의 일이 아닌 하느님의 일에 더욱 열심히 하려는 신앙적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세상이 더욱더 혼란스러워지고 무한 경쟁이 만연하더라도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깁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마르코 8: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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