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1년 4월 4일

알렐루야, 알렐루야! 주님 부활하셨네……

  오늘 2021년 4월 4일 부활 주일을 맞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 모두를 포근히 감싸길 기도드립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 모두를 기쁘게 하길 기도드립니다. 주님의 부활이 여러분 모두가 어둡고 두려움에 가득 찬 일상에서 자유로워지고,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새로운 시작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작년 사순 중간에 시작된 팬데믹의 여파로 사순 시기를 잃고 부활을 잃은 지도 일 년이 넘었습니다.  올해 아직도 팬데믹의 중간에서 우리 모두가 고생하고 있지만 다행히 부활을 부분적으로나마 지낼 수 있게 되었음이 기쁩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함께 자유로이 부활 미사에 참례하고 서로 기쁨을 나누던 재작년의 부활 주일을 그리워하며 오늘 그나마 대면과 온라인으로 미사를 드리며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수난과 죽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은 주님조차 원하지 않았던 삶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얻은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올해처럼 부활의 의미가 깊이 다가온 적이 없었습니다. 평온한 일상을 살아오면서 부활이 이성적인 중요성과 신앙적 중요성을 넘어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희망의 이유가 됩니다. 팬데믹이 끝나고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희망의 이유가 됩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두려움과 불안에서 오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고통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함께 무덤에 묻히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절실히 바라며 예수님의 파스카의 성삼일에 동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드로와 요한에게 보여주신 텅 빈 무덤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였듯이 우리의 가슴을 꽉 채운 죽음의 그림자인 두려움과 불안감의 고통이 사라진 텅 빈 가슴을 마주하길 기대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늘에는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죽음을 불사하고 순명하는 믿음의 궁극의 열매를 보여줍니다. 이는 아담과 이브가 보여준 불응은 결국 그들의 에덴동산에서의 축출을 불러왔고 인간적 고난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순명은 신앙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이는 노아의 방주에서도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노아의 순명은 40일 밤낮의 홍수를 피하게 하는 구원의 기본이 됩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순명으로 인해 그의 자손은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이 되어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 계약을 맺게 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순명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희생이었고 이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낸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순명의 열매는 바로 부활입니다. 아버지께는 영광이고 땅에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이루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하느님의 평화는 단순히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말하지 않습니다.  평화는 분란의 상황 중에도 두려움이 없이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해나가는 원동력입니다.

  하느님의 평화는 타협의 산물이 아닙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여 문제를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에 다가서 그와 맞닥트리는 용기의 산물입니다. 물론 이 과정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여정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는 여정에서 세상과 대립되는 괴롭고 불편한 과정이 세상 적으로는 분란이지만, 예수님처럼 묵묵히 그 말씀을 따르는 길은 오히려 평화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적으로 수난과 죽음은 명백한 하느님 말씀의 실패를 말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의 실패가 아니라 과정일 뿐입니다. 세상 적으로 바보 같고 어리숙하게 보이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부활이라는 믿기 어려운 열매를 맺게 되는 과정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당신의 말씀을 순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명해야 할 말씀은 ‘이웃 사랑’입니다. 이웃과의 경쟁이나 나의 두려움을 잊기 위해 이웃을 미워하는 것과 나의 실패를 합리화하기 위해 이웃에게 탓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파스카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의 잘못을 회개하는 용기와 이웃을 용서하는 자비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두려움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생기는 용기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나아가 오늘 예수님의 시신을 묻은 무덤이 텅 비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가슴속에 묻은 죽음의 이유들, 즉 욕망, 시기, 질투, 비난, 비평, 미움, 분노, 나아가 열등의식까지 모두 비워 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빈 무덤이 밝히는 예수님의 부활처럼 우리 삶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부활입니다.

  그렇기에 바오로 성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위험을 죽음을 매일 감수한다는 고백입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품고 있는 긍지, 곧 여러분에 대한 나의 긍지를 걸고 말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코린토 1서 15:31)

  세계는 지금 가장 어려운 유혹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시작된 이 시간은 단순히 바이러스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고귀한 인성의 시험입니다. 각자의 생존을 위해 다른 이들을 밝고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미워하고 책임을 전가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서로 화해하고 도우며 이 험난한 난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나라와 나라가 돕고, 사회와 사회가 돕고, 이웃과 이웃이 도와서 극복해 날 갈 때 우리는 다시 그리운 평범한 일상을 다시 얻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는 단순히 백신과 치료제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과 같이 함께 가는 인생 여정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

  오늘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그 부활이 우리의 삶을 되살리는 희망의 불꽃이라는 믿음을 강하게 되새깁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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