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1년 4월 3일

오늘은 지난 40일간의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부활 성야 성토요일입니다. 역시 쌀쌀하지만 화창한 봄날입니다. 아무리 따듯해도 겨울은 겨울이듯이, 아무리 쌀쌀해도 봄은 봄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구세주의 어머니 성모상앞의 노란 튤립이 마음을 따듯하게 합니다.

봄과 함께 기뻐하는 부활의 전날은 아이러니합니다. 어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은 아직 돌문이 굳게 닫힌 무덤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쁨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을 우리도 꿈꾸고 있습니다.

성토요일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은 신학교 때의 사건입니다. 신학교 몇 학년 때인지 이제는 정확한 해도 가물거리는 옛날 일이지만 그 때 사건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성토요일 아침이며 부활 성야 준비를 하느라 분주합니다. 성당을 청소하는 팀과 성당 제대와 촛대 등을 닦고 광내는 팀, 성야 미사를 준비하는 팀과 성당을 장식하는 팀 등등. 각자 맡은 임무에 정신이 없는 아침입니다.

그때 저는 성당 꽃을 담당하여 팀원이 둘러 모여 신학교 담장에서 꺾어온 개나리꽃을 다듬어 커다란 화병에 꽂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전지 가위를 들고 개나리꽃 가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화병에 꽂으면서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남자들도 모이면 수다 떠느라 시끄럽습니다.)

한참 웃고 떠들며 개니리꽃 가지를 다듬다가 떠드는데 정신이 팔려 가지가 아니라 제 검지 손가락을 잘랐습니다. “악”소리와 함께 가위를 놓치고 자른 손가락을 보니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데 다행이 손가락은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냥 깊게 벤 것이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피 흘리는 손가락을 누르고 삼층의 양호실로 달려가고 동료들도 따라 올라갔습니다. 그래도 예전에 배운 응급처치로 벤 손가락의 피를 빼는데 옆에서 거들던 동료가 흐르는 피를 보고 놀래 비틀거리며 자리를 뜨고, 혼자 응급처치를 하고 붕대를 감아 손가락을 높이 들고 다른 동료의 도움으로 헌팅튼 타운의 병원 응급실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날 밤 성야 미사에 마침 촛불 지기 복사를 섰는데 붕대로 칭칭 감은 검지 손가락을 촛대만큼이나 높이 들고 성전에 입장하던 생각이 납니다. 동료 신학생들이 가운데 손가락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농담을 하며 불편하지만 재미있는 추억의 성토요일이 되었음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성토요일 아침은 언제나 기분이 좋습니다. 가슴이 뿌듯하고 차가운 봄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왠지 부활 주일 아침보다 성토요일 아침이 훨씬 더 부활 같고 기쁜 것은 잔치 준비를 하는 집의 아이같은 설렘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긴 어릴 적 집안 제사가 참 많았는데 어머니께서 부엌에서 제사음식을 준비하고 제기를 닦고 하는 준비를 할 때 제일 기분이 좋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전에는 오늘 아이들이 모여 부활 계란을 장식하느라 분주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오늘은 그렇지가 못하지만, 그래도 햇살이 가득한 성당 마당이 고즈녁합니다. 햇살을 받으며 성당 ‘기도 뜰’ 벤치에 앉아 가만히 앉아있어도 가슴 뿌듯한 설렘으로 가득한 행복을 느낄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오늘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40일의여정을 끝내는 기쁨과 부활을 기다리는 기쁨이 교차하는 성토요일의 행복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그 기쁨이 예수님께 감사하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화창한 햇살을 가르고 차가운 봄바람이 정원의 꽃들을 스칩니다. 흔들리는 꽃들이 마치 손을 흔들며 반기 듯 정겹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오히려 싱그럽습니다. 따듯한 커피 한 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으면 더욱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의 성야 미사가 기대가 됩니다. 커다란 부활 파스카 초에 불을 붙이고 어두운 성전을 희미하게 밝히며 제대로 향하는 불빛의 아름다움을 기대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치 우리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는 듯한 느낌입니다.

오늘밤 우리는 알렐루야를 다시 외칠 것입니다. “하느님 찬미합니다.”라는 뜻의 알렐루야를 외치며 예수님의 부활을 노래할 것입니다. 그 노래에 지난 40일간의 여정의 은총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우리에게 쏟아질 것입니다.

아직도 성당은 부활을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이 분주함이 기쁨의 분주함이고 설렘의 분주함입니다. 커다란 잔치를 앞둔 아이의 마음으로 분주히 돌아다닙니다. 봉사자들이 참 고마울 뿐입니다. 힘든 중에도 입가에 가득한 미소가 부활 하신 예수님의 미소일 것입니다.

시편 42(41),3.5ㄱㄴㄷㄹ; 43(42),3.4(◎ 42〔41〕,2)
◎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
○ 영광의 초막, 하느님의 집까지, 환호와 찬미 소리 드높은 가운데 축제의 무리와 행진하였나이다. ◎
○ 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당신의 거룩한 산, 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 ◎
○ 저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오리다. 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비파 타며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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