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1년 4월 2일

오늘은 성삼일 둘째 날 “주님 수난 성금요일” 인 4월 2일입니다. 어제와 달리 햇살이 화창하지만 바람이 매우 차갑습니다. 왠지 성삼일이 되면 날씨가 흐리고 추워지는 느낌입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하늘도 애도하는 듯합니다. 그래도 수난과 죽음 다음 부활하신 예수님의 희망에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어제 최후의 만찬 후 예수님은 제자 몇몇과 게세마니 동산으로 가십니다. 거기서 올리브 나무 사이에서 피땀 흘리시며 기도를 합니다. 이미 예수님은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신으로 수석 사제들에게 잡힐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에 의하면 여기서 예수님은 인간적인 기도를 하십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14: 36)

예수님의 지극히 인간적인 기도와 지극한 믿음의 기도가 공존하는 이 기도에서 우리의 갈등이 돋보입니다. 인간적인 삶과 하느님의 삶 사이에서의 갈등입니다. 이 갈등에 예수님은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정도입니다. (14: 34)

극한의 갈등 속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삶, 즉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을 선택합니다. 예수님의 이 위대한 결단 후에 둘러보니 제자들이 자고있는 것 보시고 “시몬아, 자고 있는냐? 한 시간도 깨어있지 못한단 말이냐?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않는다.”(14: 37-38) (참고로 이 대목이 우리가 주로 첫 금요일에 하는 “성시간”의 배경입니다. 한 시간 동안 성체 현시와 함께 예수님의 게세마니에서의 기도를 묵상하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도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고난과 다가올 부활에 대한 삶의 희망을 되새기는 성스러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수난은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언제나 행복과 기쁨의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의 삶이 언제나 행복하길 바라지만 결국 불행과 행복의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며 엮어내는 옷감과 같다는 것입니다.

불행한 시간이 저주받은 시간 같아도 극복해내고 나면 삶의 한 부분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불행한 순간 모든 희망을 잃고 극도의 절망의 순간에 모든 것을 포기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절망을 버텨내면 긴 터널의 끝처럼 한줄기 빛이 비춤을 알게 되고, 결국 그 절망의 순간을 버텨내고 이겨낸 것이 가장 뿌듯한 순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오늘 예수님의 수난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수난과 죽음을 피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렇다고 이를 어쩔 수없이 피동적으로 또는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수난과 죽음을 부활의 과정으로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극도의 불행하고 절망적인 순간을 오히려 희망의 순간으로 만들고, 불쌍하고 안타까운 순간을 오히려 감동의 순간으로 만들어 예수님의 모습이 전장에서 패한 패장의 모습이 아니라 고군분투하며 최전선에서 적을 막아내는 용장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가슴이 메어지게 슬프면서도 가슴이 뿌듯해지는 역설적인 감동의 사건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삶을 바라보면서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절망의 순간이나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에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삶은 수동적이고 피동적이기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개척하는 삶입니다. 단순히 넓고 순탄한 길을 기대하기 보다는 가지 않은 길도 갈 용기와 희망을 주셨습니다. 고난과 슬픔이 없기를 바라기 보다는 그 순간에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날실과 씨실이 교차되어 짜나가는 옷감과 같습니다. 고통, 슬픔, 억울함, 수치와 절망이 우리 삶의 옷감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운 무늬로 장식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예수님은 회개와 용서로 복음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과정은 우리의 수난과 죽음이 부활로 가는 길이며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역경의 길이라는 사실을 예수님 자신이 우리에게 손수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치욕의 수난과 십자가 나무 위에 들여 올려진 예수님을 목격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치욕에서 우리의 치욕을 씻어냅니다. 예수님의 흘리는 피에서 우리의 고통을 씻어내고 죄를 씻어내고 절망과 두려움을 씻어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절규에서 우리는 부활을 꿈꿉니다.

시편 31(30),2와 6.12-13.15-16.17과 25(◎ 루카 23,46)
◎ 아버지, 제 영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 주님, 제가 당신께 피신하오니,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의로움으로 저를 구하소서.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오니, 주님, 진실하신 하느님, 저를 구원하소서. ◎
○ 모든 원수들 때문에 저는 조롱거리가 되고, 이웃들을 소스라치게 하나이다. 아는 이들도 저를 무서워하고, 길에서 보는 이마다 저를 피해 가나이다. 저는 죽은 사람처럼 마음에서 잊히고, 깨진 그릇처럼 되었나이다. ◎
○ 주님, 저는 당신만 믿고 아뢰나이다.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제 운명 당신 손에 달렸으니, 원수와 박해자들 손에서 구원하소서. ◎
○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주님께 희망을 두는 모든 이들아, 힘을 내어라, 마음을 굳게 가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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