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4년 8월 18일연중 제20주간을 맞는 팔월 중순, 이제 말복도 지나고 나니 심리적으로 한여름의 열기가 꺾이고, 가을 느낌을 살짝 느끼기도 합니다. 아직 어린 시절 동네 어른들이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는 것이 야속하다는 말씀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요한 복음 사가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3: 16)
하느님의 사랑은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목적지 항구와도 같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그네의 발길에 힘을 실어주는 고향 집과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고향 집의 백미는 “엄마 밥”입니다. 어머니께서 갓 지은 밥을 가득 담아 뚜껑을 덮어 밥이 식지 않게 이불 속에 넣어 놓고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사랑은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6: 51)
당신의 살을 내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그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 13) 예수님은 그 큰 사랑을 당신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실천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라고 명하십니다.
예수님의 큰 사랑을 기념하며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성사가 바로 ‘성체 성사’입니다. 빵과 포도주를 성령으로 축성하여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된 성체를 모심으로써 예수님의 그 사랑을 되새기며 예수님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믿는 이들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이 되고 손이 되고 발이 되고 눈이 되고 귀가 되어 세상의 아픔과 슬픔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사랑을 나누는 삶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 생활입니다.
성체 성사는 ‘입문성사’라고 합니다. 입문 즉 문으로 들어가는 성사입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바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시작은 ‘세례 성사’로 시작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모든 죄를 씻고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는 성사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으로 그렇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례받은 이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성령과 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는 성령의 도움으로 언제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 확실하게 인증받는 성사가 견진 성사입니다. 성유 기름 받음과 함께 주례 사제의 이 말,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십시오.”로 성령께서 언제나 우리 안에 계심을 확인하는 성사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성령과 함께 살아갑니다. 우리가 세례로 들어간 ‘좁은 문’을 되돌아 나가지 않고 아버지 하느님을 향해 앞으로 굳건하게 걸어가는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그리고 ‘입문 성사’의 완성은 ‘성체 성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견진성사로 성령의 도움을 받고, 성체 성사로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요즘 몇 주일 계속해서 요한 복음의 6장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빵의 비유로 드러나는 나눔의 사랑과 당신 자신이 우리를 위해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이 되시는 신비를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특히 이번 주일의 말씀은 바로 신비의 ‘성체성사’를 드러냅니다.
사실 ‘성체 성사’는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신비의 성사입니다. 이는 공관 복음 모두에 나오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수난을 받기 전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면서 제자들에게 직접 명하신 성사입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루카 22: 19)
그런데 요한 복음의 ‘최후의 만찬’에는 ‘빵 나눔’이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이는 이미 복음 전체를 아우르며, 특히 6장에서 ‘생명의 빵’이 당신의 살이라고 분명히 밝히시며 성체 성사를 드러내셨고, ‘발 씻김’을 통해서 ‘성체 성사’는 바로 섬김의 성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고로 예수님의 사랑은 섬김의 사랑입니다.
사랑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천륜의 사랑과 남녀의 사랑과 친구 간의 사랑 등등…… 그 사랑 방법도 희생의 사랑과 소유의 사랑과 집착의 사랑과 자유를 주는 사랑, 등등 예수님의 사랑을 ‘섬김’의 사랑이라고 할 때, 이는 희생의 사랑이며 자유를 주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은 섬김과 나눔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구속하지 않습니다.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나아가 사랑이라 이름으로 소유하고 삶을 컨트롤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걱정하며 조종하기보다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 수 있게 믿어주고 도와주는 사랑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성체성사는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를 가장 잘 드러내는 성사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 성체 성사는 그 의미를 잘 드러냅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살을 나누며, 영적 성장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성체 성사는 일치의 성사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며, 믿는 이들이 함께 더불어 일치를 이루는 성사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 교회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성사인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6: 56-57)
‘영원한 생명의 빵’을 나누어 먹는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이고, 한 형제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일치하여 서로 나누고 섬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달라 우리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이들을 미워하기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해 주라고 명하십니다.
이러한 사랑은 우리 일상의 소소한 일에서 시작합니다. 소소한 나눔, 소소한 배려, 소소하게 칭찬하며 나아가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에페소서 5: 20) 살아가는 일상에서 우리는 큰 행복을 발견합니다. 큰 사랑의 감동을 받습니다. 한여름 문득 불어오는 미풍에도 우리 삶이 참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