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4년 5월 26일

오늘은 연중 제8주일이면서 어느새 메모리얼 연휴와 함께 여름에 접어듭니다. 메모리얼 데이 연휴부터 모든 주립공원이나 비치는 주차료를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또 졸업 시즌입니다. 벌써 각 대학들이 졸업하고 있습니다. 올해 졸업하는 학생들과 부모님들에 축하 메시지를 보냅니다. 졸업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시작을 걱정보다는 주님께서 보여주는 희망과 설렘으로 하길 기도드립니다.

 

새로운 시작을 희망과 설렘 가득 차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은 주님의 수난과 부활로 증명하셨고, 성령을 보내주시어 우리도 수난과 부활의 영광 안에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두려움이 아니라 용기와 희망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50일간의 부활 시기의 대미를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성령강림 대축일을 지냈습니다. 성부와 성자로부터 오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열두 사도들을 위시하여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은 그래서 교회의 생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주일은 성령강림의 의미를 설명해 줍니다. 성령 강림으로 시작한 교회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신앙의 신비이며, 이는 또한 다음 주일에 지내는 ‘지극히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로 보이지 표징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성체성사는 보이지 않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보이는 표징입니다.

 

요약하자면 세상 구원을 위해 성부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보호자 성령을 보내시어 교회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저 현재 화를 면하고 평안히 살기 위한 구복신앙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위한 세상 구원에 참여하는 구원신앙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인 마태오 복음의 마지막 부분이 바로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교회의 사명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28: 18-20)

 

성령을 통해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삶에 동참하고, 또한 언제나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이 신비는 바로 우리의 세례성사로 이루어졌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설명대로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받은 세례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동참하였고, 이를 인해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신비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머물러 각인되었기 때문입니다. 견진 성사는 이를 확인하는 성사입니다.

 

요한복음은 성령을 보호자 진리의 영이라 불렀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고, 진리를 따르도록 하느님께 인도합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진리는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의 진리입니다. 따라서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사랑을 빼고는 우리 신앙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고린도 13: 3)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셨고,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주셨고, 이제 성령을 통해 언제나 우리와 함께 생명을 나누십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만큼 서로 나누라고 하십니다. 삶을 나누며 살아가라 하십니다. 그 대상은 모든 민족입니다. 이는 보편적 구원을 말합니다.

 

사랑의 대상은 누구나입니다. 만일 내 가족만 사랑하고, 내 친구만 사랑하고, 내 맘에 드는 이들만 사랑하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이들만 사랑하고……나와 가까운 이들만 사랑한다면, 이는 하느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이는 나눔의 사랑이 아니라 집착의 사랑이며 소유의 사랑입니다. 악인들도 이런 사랑은 한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 자신을 가톨릭교회라 할 때, 우리의 사랑을 보편적인 사랑이고, 그 대상은 편협한 생각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교회는 순례의 교회여야 합니다. 머무르기보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고, 제자들이 그렇게 했으며, 지난 이천 년 동안 교회가 그랬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순례의 교회였습니다. 그렇기에 이백 년 전에 주님의 복음은 드디어 한국 땅에 다다랐고, 수많은 순교 조상의 피로 우리 신앙은 굳건하게 성장하였습니다. 이러한 굴곡진 여정 속에서도 삼위일체 하느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의 지혜로써, 용기로써, 희망으로써 현존하시어 우리의 순례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도 삼위일체 하느님의 삶 안에서 구원 사업에 동참한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새벽에 우리 본당에서 주관하는 볼리비아 의료 선교에 열 명의 의료 봉사자가 곽 신부님의 인솔하에 산타크루즈로 떠났습니다. 이는 지난 십 년 동안 우리가 꾸준히 나눠온 삶이며 사랑입니다. 십시일반의 도움과 기도를 통한 영적 응원으로 우리의 사랑을 꾸준히 나누었습니다.

 

남미의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에 파견된 대구 교구 신부들의 선교지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또 유월 말에는 고등학생들이 가서 봉사합니다. 우리의 손길로 많은 이들이 생명을 얻고, 우리의 삶도 가슴 뿌듯하게 넉넉해집니다. 우리 공동체는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사랑은 땅에 떨어져 썩으면 몇십 배 몇백 배의 열매를 맺는 밀알 같아서 주면 줄수록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나눔입니다. 아주 사소한 나눔에서 삶은 충분히 넉넉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나눔을 우습게 여깁니다. 부끄럽게 여깁니다. 하찮게 여깁니다. 큰 나눔이 진정한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큰 나눔을 마음만 굴뚝같고 정작 실천하지 못합니다. 너무 커서……

 

어차피 사랑은 하찮게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처럼……너무나 소소해서 하찮아 보이는 사랑에 감동하고 기뻐하고 살맛을 느낍니다. 소소해서 실천하기가 쉽습니다.

 

볼리비아에는 비록 몇몇이 갔지만, 우리가 모두 간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함께했고, 우리의 십시일반 모금이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랑 나눔이며, 생명 나눔입니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가 더욱 자랑스럽습니다. 사랑은 또 내일의 희망이 됩니다.

 

다음 주일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냅니다. 보이지 않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보이는 표징인 성체 성사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체험하며,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거룩한 몸으로 승화됩니다. 그렇게 우리의 사명은 예수님의 거룩한 지체로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 견진 성사를 받은 주일학교 9학년 학생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는 예수님의 손과 발로 성장하길 기도드립니다.

 

오늘과 내일 메모리얼 데이 연휴 동안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 대축일을 맞아 초여름 따가운 한낮 태양을 피해 나무 그늘에서 땀을 씻어주는 한 줄기 바람처럼 주님의 설레는 사랑을 넉넉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로 이웃과 소소하게 나누며 행복한 휴일 보내시길 기도드립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2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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